2020년 초부터 한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숱한 오심 논란이 일어났다. 올해는 K리그 심판 운영 주체가 한국프로축구연맹(축구연맹)에서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로 바뀐 첫해다. 축구협회는 오심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해명했지만, 이후 논란이 더욱 커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예고된 오심.
본지가 심판 문제를 심층 취재하면서 다다른 결론이다. 축구계 일부에서는 축구협회 심판 고위급의 '특정 심판 감싸기'가 잇따른 오심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정 팀을 봐주는 오심이 아니라, 특정 심판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일간스포츠는 이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에 들어갔다. 수많은 제보자를 만났고, 심판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결과 '특정 심판 감싸기'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장면들이 보였다. 잇단 오심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였다. 본지는 4회에 걸쳐 심판계의 구조적 문제를 심층 보도한다.
1회에서 다뤘던 A는 규정을 위반했다. 그런데도 축구협회는 경징계를 내려 그가 심판 활동을 이어갈 길을 열어줬다. 2회에 등장하는 C는 조금 다른 경우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민감한 채용 관련 의혹이다. 축구협회는 C에게 새로운 행정직의 길을 열어줬다. 이 과정이 석연치 않다. 특정 인물에 의해 좌우되는 심판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품고 있다.
◈심판운영팀장은 누굴 위한 자리인가
국제심판 C는 2018년 7월부터 12월까지 월 250만원씩 축구협회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 C가 수술을 받은 뒤 심판 활동을 하지 못하고 수입이 없어지자 축구협회가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는 축구협회가 심판에게 급여가 아닌 지원금을 지원한 최초의 사례다.
지원이 끝난 다음 달, 2019년 1월 축구협회는 조직개편을 통해 C를 심판운영실 심판운영팀장(팀장)으로 선임했다.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전진 배치한다는 게 인사의 목적이었다. 심판운영실에도 이런 의지가 전해졌고, 한국의 간판 심판으로 활동한 C를 팀장으로 선택했다. 특별채용(특채)된 계약직이었다. 심판이 축구협회 행정 일선에 참여한 첫 번째 사례였다.
팀장으로 1년 5개월 재직한 C는 2020년 5월 말 사임했다. 공석이 되자 축구협회는 2주 후인 6월 초 팀장 공개채용(공채) 공고를 냈다. 고용형태는 정규직. '심판활동 겸직 불가'라는 조건을 달았다. 자격요건은 고등학교 이상 졸업자, K리그 심판 3년 이상 경력자, 영어 가능자 등이었다.
자신이 그만둬 공석이 생긴 자리에 C가 지원서를 냈다. 축구협회에서 최초로 심판 출신 행정직 기회를 받은 사람이자 1년 5개월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팀장 공채에 지원한 것이다. 심판활동 겸직 불가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C는 심판 신분을 유지한 채 지원했다. C는 서류심사를 통과한 뒤 최종면접까지 봤다. 결과는 탈락. C는 현재 K리그1(1부리그) 주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축구협회에 따르면 C는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다. 심판운영팀장 업무에 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C는 17개월 만에 스스로 떠났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다시 지원했다. 이 과정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축구협회는 "C가 심판과 행정 업무를 겸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C에게 행정직과 심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고, 심판을 하겠다고 결정해 사퇴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C는 왜 다시 공채에 지원했을까. 그리고 왜 탈락했을까.
축구협회는 "기존 팀장은 계약직이었다. 공석이 되서 내부 논의 끝에 정규직으로 선발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2명이 지원했고, 그중 한 명이 C다. 정규직이니까 C가 도전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상황이 달랐다. 영어를 포함한 C의 업무 능력이 축구협회의 다른 공채 정규직과 비교해 부족했다. 정규직으로 뽑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정규직과 계약직 기준이 다르다. 정규직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다른 지원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채용 과정에 대해 축구협회 설명은 충분한 걸까. C는 올해 초 업무 성과를 인정받아 계약 연장을 했다. 또 그는 국제심판이다. 영어 구사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축구협회는 영어가 탈락의 한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판운영팀장은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평가한다며 축구협회가 만든 자리다. 축구협회가 한국 최고의 심판이라고 평가한 C가 탈락했다. 과연 그 대신에 다른 이가 합격할 수 있었을까. 팀장 자리는 현재까지 공석이다. 축구협회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채용 과정에서 다른 힘이 작용한 것일까.
C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것에 대해 축구협회는 "C는 한국 탑 레프리다. 한국 축구에 크게 기여한 친구다. 건강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축구협회가 도우면 좋겠다고 결정했다. 이건 미담이라고 생각한다. 심판에게 위로금이 지급되는 건 처음이다. 앞으로 이런 심판 위로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사자도 부적절한 지원 인정
C는 자신이 그만둔 자리에 왜 지원했을까. C는 팀장 선임 당시 "원창호 심판위원장의 제안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원창호 위원장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C를 심판운영팀장에 추천한 건 맞다. 심판의 국제경쟁력 강화 업무를 할 수 있는 이를 찾는 과정에서 C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사임과 공채 지원에 대해 원창호 위원장은 "심판과 행정직 겸직 문제가 나왔고, 본인이 심판을 해보겠다고 사임했다. 그런데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뽑다 보니 C가 도전해볼 만 하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C가 지원할 줄은 몰랐다. 반신반의하면서 지원한 거 같다. C가 나에게 '제가 잘못한 거 같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일련의 과정이 처음부터 C를 발탁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냐는 주장이 한편에서 제기됐다. 경력과 전문성을 갖췄고, 해당 업무를 1년 5개월 동안 수행한 이가 지원한다면 당연히 채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내정된 이가 있다면 공채는 허울이 된다. 이 과정에서 희생양이 등장한다. 이런 '무리한 움직임'이 논란을 만들었다. 그러자 '작업'을 중단했다는 시각이 있다.
원창호 위원장도 이런 시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C가 사임한 다음에 다시 지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C가 잘못 생각했다. 채용 시기를 보면 '누구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언가를 하려 했던 건 아니다. 행정적 절차에 대해서는 (내가) 정확히 모르지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뽑으면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 있고, 마땅한 대안도 없어 공채를 중단한 것으로 안다. C도 나에게 '괜히 지원해서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