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98년 프로축구 무대에 데뷔한 후 23년 동안 그라운드를 지키면서 희비가 엇갈린 순간을 수없이 경험한 베테랑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두 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대표였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유럽 리그의 문을 두들겼던 도전자였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박이 아빠'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K리그 현역 최고령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올 시즌도 푸른 잔디를 누볐던 이동국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동국은 2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아쉬움과 고마움이 함께했던 올 시즌을 끝으로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라운드 안팎에서 격려와 사랑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축구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30대 중후반 나이에 은퇴한다. 그러나 이동국은 '최고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도 변함없는 기량과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달렸다. 마흔한 살이 된 올해도 끝없이 은퇴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다. 이동국은 그때마다 "나는 늘 '올해 은퇴한다'는 생각으로 매 시즌을 뛰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올 시즌 중반 무릎 부상을 당한 뒤 그의 고민이 깊어졌고, 결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동국은 지금의 'K리그 1강' 전북을 만든 주역이자, 전북의 '우승 DNA'를 이루는 뿌리 그 자체다. 이동국과 전북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K리그 유턴 후 2009년 전북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이동국이 이만한 활약을 펼칠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은 없었다. 최강희(61) 전 감독과 만난 이동국은 이적 첫해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상을 거머쥐며 전북의 창단 첫 K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했다. 제2의 전성기의 시작이자, 이동국이 써 내려 갈 새로운 역사의 서문이었다.
그때부터 이동국과 전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전북은 2009년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최강희 감독 지휘로 명실상부한 K리그 리딩클럽으로 거듭났다. 이동국은 그 모든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전북이 K리그1에서 7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이동국이 중심에 있었다.
매 시즌 꾸준한 활약은 기본이었다. 잠시 주춤한 순간은 있을지언정 이동국은 언제나 자신을 향한 의문에 실력으로 대답해왔다. K리그 통산 최다 골(228골), ACL 최다 골(37골) 기록, K리그 최초의 70(골)-70(도움) 클럽 가입, 10시즌 연속 정규리그 두 자릿수 득점 기록(2009년~18년) 등 그가 세운 모든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도 리그 최강 팀의 에이스로 경기에 나서는 이동국을 보고 누구도 '경로 우대'라고 비아냥거리지 못했다.
이 모든 기록이 '축구 선수' 이동국의 자부심이라면,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그의 존재는 '전북의 자부심'이다. 또래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났고, 이적과 임대 등으로 선수단 구성이 계속 변하는 가운데서도 이동국은 전북의 중심을 굳게 지켰다.
'전북 왕조'를 함께 일군 최강희 감독이 2018년을 끝으로 전북과 이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동국의 거취에 관한 질문이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졌지만, 그는 전북에 남아 전주성과 봉동을 지켰다. 홍정호(31)가 "전북의 '우승 DNA' 중심에 이동국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동국은 올 시즌 초반 활약하다 부상 등의 이유로 인해 10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선수단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홍정호는 "전북의 '우승 DNA'는 나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강팀에 강하고, 이겨야 할 경기에서 이긴다"며 "(이)동국이 형의 존재가 가장 크다. 중심에서 선수들을 지켜주고 이끌어준다"고 말했다.
이동국이 은퇴를 선언한 시점도 '전북의 정신적 지주'다웠다. 이동국은 11월 1일 열리는 '하나원큐 K리그1(1부리그) 2020' 27라운드 대구 FC와의 시즌 최종전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는다. 지난 주말 울산 현대와 '사실상 결승전'에서 1-0 승리를 거둬 1위 자리를 탈환한 전북은 대구전에서 무승부 이상을 거두면 K리그 사상 첫 4연패라는 대기록을 쓴다.
이 경기가 '전설' 이동국의 은퇴 무대가 될 것이다. 승리를 향한 전북의 투지는 어느 때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다. 전북 선수단은 이동국의 '마지막'을 전설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