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73)이 글로벌 무대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맞게 된 전성기를 만끽하는 중이다.
글로벌 행보의 첫 단추는 영화 '미나리(리 아이작 정 감독)'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할머니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할리우드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오를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미나리'는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비가 제작하고 '문라이트' 등 웰메이드 영화의 명가로 불리는 독립영화 배급사 A24가 투자한 작품이다. 독립영화를 다루는 영화제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되자마자 심상치 않은 현지 분위기가 감지됐다. 특히 유력 매체들이 윤여정에게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버라이어티는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헬레나 첸겔과 함께 '미나리'의 윤여정을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로 예측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도 '보랏2'의 마리아 바칼로바와 함께 여우조연상 '프론트러너', 즉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내다봤다. 시상식 예측 전문 사이트인 어워즈와치는 '더 프롬'의 메릴 스트립 등과 같이 윤여정을 유력 여우조연상 후보 명단에 포함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괜한 설레발이 아니란 사실이 최근 고담 어워즈에서 증명됐다. 고담 어워즈는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독립영화 시상식이다. 오스카로 향하는 긴 여정의 포문을 여는 행사로 꼽힌다. 지난 12일(현지시각) 공개된 제30회 고담 어워즈 후보 가운데 윤여정은 '미나리'로 최고의 여배우상(Best Actress)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특히, 최고의 여배우상은 주연과 조연의 구분 없이 모든 배역의 여배우를 대상으로 한 부문으로, 윤여정은 주연과 조연을 통틀어 '최고의 여배우 5인'에 포함됐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제시 버클리, '더 네스트'의 캐리 쿤, '노마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윤여정은 일흔 셋의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배우 중 하나다. 신인 감독이든 거장 감독이든, 제작비가 적든 많든, 배역이 크든 작든 상관치 않는다. "사람을 보고 일을 한다"는 그는 '미나리' 또한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사람 좋음'에 반해 출연을 결심했다. 제작비가 적었던 탓에 촬영 현장은 열악했으나, 극중 할머니 캐릭터처럼 밥까지 해먹이며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다독였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 진출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시골에서만 찍느라 정작 할리우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개봉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김초희 감독의 첫 장편 데뷔를 돕기 위해 나섰다. 신인 감독에 신인 배우, 쉽지 않았을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주류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중심을 잡은 윤여정의 공이 컸다.
최근 그에게 다가온 글로벌한 전성기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연기한 결실이다. '미나리'에 이어 애플TV의 한국 진출 첫 작품인 '파친코'에도 출연한다.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작품이기에,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윤여정의 새 작품이 스트리밍될 예정이다.
제93회 아카데미상의 후보는 2021년 3월 15일 발표된다. 상승세를 제대로 탄 윤여정이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될까. 윤여정은 "오스카 후보로 언급된다는 것도 몰랐다. (아직) 후보에 안 올랐다. 예상일 뿐이다"라고 말했고, 아이작 정 감독은 "보물 같은 윤여정을 알아본 미국인들이 인정하고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