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축구협회 오스트리아에서 멕시코·카타르와 평가전을 치른 축구대표팀의 귀국길이 간단치 않다. 조현우(울산), 권창훈(프라이부르크), 황인범(루빈 카잔), 이동준·김문환(이상 부산), 나상호(성남) 등 선수 6명과 스태프 2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들은 경기에 뛰지 못했고 호텔에서 자가 격리 중이다.
방역 당국은 축구대표팀의 상황을 집단감염으로 판단, '에어 앰뷸런스'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17일 브리핑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내 확진자에 대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해서 '에어 앰뷸런스' 섭외 등 환자 후송을 준비하고 있다. '에어 앰뷸런스'를 통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격리병상을 배정하고, 음압구급차 등으로 의료기관으로 후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상 유례없는 방법이 동원될 만큼 축구대표팀의 상황은 심각하다. 확진자들의 입국이 어렵고 복잡하겠지만, 귀국 후 치료에도 상당한 방역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세금이 투입되는 일이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8일 318명(81일 만에 최대)에 이를 만큼 위급한 상황에서 의료진과 병상 등 비용 부담이 더해졌다.
이와 별개로 대한축구협회(KFA)는 전세기를 파견해 확진자들의 빠른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기가 오스트리아로 가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항로 허가를 받는 데 일주일가량 시간이 필요하다.
현지에서 축구대표팀의 방역 상황은 상당히 위험했던 것 같다. 권창훈이 양성 판정을 받자 소속 클럽 프라이부르크는 즉각 방역 차량을 보내 그를 독일로 데려왔다. 손흥민을 보낸 토트넘도 예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클럽은 코로나19 확산의 심각성과 비례하는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손흥민이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기에 우려한 것이다.
지난 12일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고 있는 손흥민의 모습. 대한축구협회 조세 무리뉴 토트넘 감독은 17일 자신의 SNS에 "아주 감동적인 친선경기다. 모르는 사람들과 대표팀 선수들이 같은 곳에서 운동하고 있다니, 매우 안전하다"라고 썼다. 토트넘의 에이스 손흥민을 보낸 한국 대표팀이 매우 위험해 보인다는 메시지를 반어법으로 전한 것이다. 토트넘은 전세기를 보내 18일 카타르전이 끝나자마자 손흥민을 데려왔다.
11월 A매치 기간을 맞아 지구촌 곳곳에서 축구 대회가 열렸다. 유럽에서는 네이션스리그, 남미에서는 2020 카타르월드컵 예선이 벌어졌다. 이 기간 루이스 수아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맷 도허티(아일랜드) 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네이션스리그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대표팀에서 선수 7명이 확진돼 17일 스위스전이 취소됐다.
이런 상황은 대회 전부터 우려됐다. 클럽팀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동선을 대부분 통제할 수 있으나, 대표팀의 경우 여러 선수가 모여 이동과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협회는 평가전을 추진했다.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K-방역'이 자신감의 근거였다.
협회는 내과 전문의와 조리장을 파견하고, 호텔 한 층을 통째로 쓴다고 홍보했다. 선수들은 숙소와 경기장만 오간다고 했다. 그러나 훈련장이 문제였다. 애초 대표팀이 사용하기로 한 훈련장을 오스트리아의 봉쇄 조치로 쓰지 못하게 되면서, 보조경기장을 사용했다. 여기서 현지인(육상 선수로 추정)과 동선이 겹쳤다. 무리뉴 감독이 지적한 것도 이 장면이었다.
물론 대표팀 선수들이 현지인으로부터 감염됐다는 증거는 없다. 문제는 대표팀 선수들의 감염은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전염'이라는 점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오스트리아에서 감염됐는지 (국내 무증상 감염자였는지)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게 주치의의 설명이다. 여러 나라에서 선수들이 모인 터라 사실상 역학 조사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협회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먼저 월드컵 예선도 아닌 평가전을 왜 유럽에서 추진했느냐는 질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3~4개월 전부터 준비해왔다. 10월 A매치 데이도 포기했고, 11월 경기를 치렀다. (파울루 벤투 감독 등) 코칭스태프도 해외 원정 평가전을 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협회는 "협회의 수입 때문에 경기를 치렀다는 일부의 지적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스포츠 단체는 방역과 수입 사이에서 고민한다. 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정책 결정 과정이 힘들 수밖에 없다. 협회가 수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다행이다.
문제는 의사결정 과정이다. 9월 초 오스트리아의 일일 확진자 수는 200명 수준이었다. 10월 13일 평가전 일정을 발표할 때 979명으로 늘었다. 대표팀이 오스트리아에 입국한 9일 이후에는 매일 9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계획을 바꿀 시간과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19가 만든 세상은 잔혹하다. 2020 도쿄 올림픽을 비롯해 여러 스포츠 이벤트가 연기되고, 취소됐다. 전 세계는 이미 2차 대유행에 신음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뛰고 있는 김민재(베이징 궈안)·박지수(광저우 헝다) 등은 소속팀의 반대로 이번 원정에 동행하지 못했다. 유럽에서 평가전을 계획했던 호주와 뉴질랜드는 지난달 말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대표팀 소집을 취소했다.
선수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협회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지가 의문이다. 스폰서십 계약이나 중계권료 등의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 기량 점검이 평가전 강행의 이유였다면 이는 정말로 납득하기 어렵다. 벤투 감독이 원했다고 해도, 결정의 책임은 협회에 있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또 하나. 대표팀이 오스트리아 원정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축구대표팀은 국민의 근심이었다.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깜깜이 감염'이라고 해도 대표팀의 방역이 어디선가 뚫린 건 틀림없다. K-방역은 KFA의 방심으로 무너졌다.
또 이번 원정으로 인해 앞으로 선수 차출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무리뉴 감독의 SNS는 그 예고편 같다. 소속 선수가 확진자로 돌아온 K리그 팀에도 타격이 있다. 이는 KFA의 스폰서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홍명보 KFA 전무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선수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전세기를 포함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선수들과 스태프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국길은 그러지 못했으나, 귀국길이라도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