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은 시즌 개막 후 8월까지 평범한 투수였다. 19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이 5.21(19이닝 11자책점)이었다. 9이닝당 삼진은 13.74개로 많았다. 하지만 피안타율이 0.321로 높았다. 9이닝당 피안타도 무려 12.79개였다. 박빙 상황에서 기용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이 기간 흥미로운 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BABIP(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다. BABIP는 홈런이나, 삼진, 볼넷을 제외하고 페어 지역에 떨어진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을 의미한다. 1999년 미국의 대학원생 보로스 맥크라켄이 주장한 이론이다. BABIP가 지나치게 높은 투수는 수비 도움을 받지 못했거나, 운이 없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잘 맞은 타구가 수비수에게 많이 잡히면 BABIP는 낮아진다. 김진성의 경우는 전자에 가까웠다.
KBO 공식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8월까지 김진성의 시즌 BABIP는 0.442였다. A 구단 데이터 분석 담당자는 "일반적인 투수의 BABIP는 0.270~0.330 사이에 형성된다. 단기 기록이라고 해도 0.442라는 수치는 잘 안 나온다. 이례적으로 높다. 지극히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진성은 9월 이후 성적이 반등했다. 29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95(28⅓이닝 3자책점)를 기록했다. 이 기간 20이닝 이상 소화한 불펜 투수 27명 중 평균자책점 1위. NC가 후반기 막판 2위 그룹의 추격을 뿌리치고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불펜의 중심을 잡아줬다.
9월 이후 9이닝당 삼진이 8.58개. 이전과 비교했을 때 5개 정도 줄었다. 하지만 피안타율이 0.151로 확 떨어졌다. 빨간불이 켜졌던 포크볼(0.375→0.132)과 슬라이더(0.556→0.143) 구종 피안타율까지 믿기 힘들 정도로 달라졌다. 삼진을 제외한 나머지 투구 지표가 모두 향상됐다.
공교롭게도 김진성의 BABIP는 0.230으로 확 떨어졌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거나 수비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A 구단 데이터 분석 담당자는 "김진성은 구속과 제구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 다만 BABIP가 이렇게 낮아졌다는 건 9월 이전과 달리 운이 따랐다는 의미다. 평균값에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운'이 따르기 시작한 김진성은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 17일 시작된 한국시리즈(KS)에선 4차전까지 모든 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제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4⅔이닝 무실점. 21일 열린 KS 4차전에선 2-0으로 앞선 6회 말 무사 1루에서 등판해 공 2개로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았다. 1사 1루에서 두산 김재환을 투수 병살타로 유도한 장면은 이날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한다.
김진성은 "9월부터 성적이 좋은 건 운이 따라서라고 생각한다"며 몸을 낮췄다. 이어 "투구할 때 중심 이동을 미세하게 바꾸면서 투구 밸런스를 조정했던 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구속이 향상됐고, 포크볼 각도 좋아졌다"며 "투구폼은 외관상 큰 차이가 없지만, 던질 때 느낌이 다르다. 시즌 중 손민한 코치님과 김수경 코치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KS에서도 밸런스가 맞는지 옆에서 계속 봐주고 있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올 시즌 김진성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2월 연봉 미계약 상태로 미국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현지에서 진통 끝에 사인을 마쳤지만, 계약 조건(4000만원 삭감)에 불만이 컸다. 결국 사상 초유의 '캠프 조기 귀국'을 선택했다. 구단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팀 분위기도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즌 첫 1군 등록은 6월 7일이었다.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투구 내용(2경기 평균자책점 13.50)이 좋지 않아 닷새 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스프링캠프를 원활하게 치르지 못한 여파인 듯했다. 2군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김진성은 7월 10일 1군에 재등록됐다. 이후 엔트리 말소 없이 1군에서 입지를 넓혔다. 추격조로 시작해 필승조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운이 자신감으로 연결됐고, 성적까지 향상됐다.
KS 4차전이 끝난 뒤 이동욱 감독은 김진성에 대해 "현재 불펜에서 구위가 가장 좋다"고 촌평했다. 김진성은 180도 다른 투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