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 전엔 없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영화 '콜(이충현 감독)'을 통해 강렬한 여성 빌런의 등장을 선언한 전종서다.
전종서, 대중에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아직은 아주 짧은 필모그래피를 가진 탓이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거장 이창동 감독에게 발탁돼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5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어찌됐든 아트 필름으로 분류된 영화의 여주인공이기에 전종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배우다. 그런 전종서의 두 번째 영화가 공개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을 미루다 넷플릭스 행을 택한 영화 '콜'이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우려가 많았으나 '콜'이 공개되자마자 파장을 일으켰다. 영숙 역을 맡은 전종서의 발견이 이 파장의 8할이다.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14분 분량을 단 한 번의 롱테이크로 촬영한 실험적 기법의 단편영화 '몸 값'으로 각종 시상식을 휩쓴 이충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극 중 전종서는 자신의 끔찍한 미래를 알고 폭주하는 영숙을 연기한다. 스위치를 '툭'하고 켜듯 어느 순간 내면의 광기를 꺼내 놓는다. 이미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듯, 광기를 주체하지 못해 연쇄살인마가 되는 인물이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강렬한 여성 빌런이 이렇게 탄생했다.
영화에는 기존 호러 스릴러 영화에서 가지고 온 클리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야기 흐름도 예상 가능한 정도를 펼쳐 보인다. 그럼에도 '콜'이 살아 숨쉬는 건 모두 전종서 덕분이다. 이 영화 속에서 전종서는 더 이상 전종서가 아니다. 영숙 그 자체라는 극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영화의 이야기는 예상 가능한데, 전종서의 연기는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종서의 연기는 사이코패스 영숙의 광기 어린 행동과 많이 닮았다.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압도하는 전종서의 에너지가 관객을 '콜'이라는 악몽 같은 세계에 깊숙히 빠져들게 한다.
전종서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매 신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끝내고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시작 전에 대본을 정말 많이 심도 있게 파고 들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감독님과 하루종일 이야기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감독님의 구상이 '이게' 맞는지 체크하고 그림을 흡사하게 맞춰 놓았다. 그림이 완성된 상황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에 들어간 후부터는 오늘 내가 무슨 촬영을 하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겠다는 구체적 방안은 연기를 하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임했다. 영숙의 감정이 고조되고 변화돼 가는 것들을 숫자로 생각했다. '오늘은 몇 번까지 끌어올려야겠다' 이런 식으로 감정선을 끌고 갔다"고 설명했다.
그런 전종서와 처음 호흡을 맞춘 이충현 감독은 전종서의 날것 같은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객을 소름돋게 만드는 결정적인 행동과 대사 일부는 상황에 빠져든 전종서의 애드리브였다고도 전했다. 이 감독은 "거의 매 순간이 날것이었다. 카메라 감독님도 배우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대비했다. 전종서는 매 테이크마다 다른 움직임을 보여줬다. 박신혜와 전화를 하다가 싱크대 같은 곳에서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배우 말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갑자기 배우가 그런 식으로 움직여서 카메라도 따라갔다. 전종서가 연기할 때 생각을 한다기보다 동물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의 선구안은 점차 빛을 보고 있다. '버닝'의 신데렐라였던 전종서는 이제 여성 빌런의 아이콘 자리를 노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 배우 케이트 허드슨과 찍은 영화 '모나 리자 앤드 더 블러드문'으로 할리우드 진출도 완수했다. 발칙한 상상력으로 정평이 난 정가영 감독의 영화 '우리, 자영'을 통해 전종서표 로맨틱 코미디도 보여줄 예정이다.
쏟아지는 호평에 전종서는 "이렇게까지 '콜'을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실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해주신 분들이 생각 났다"면서 "정말 많은 걸 쏟아부었다. 거기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