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시즌. 고등학교(유신고)를 갓 졸업한 19살 신인 투수에게는 더 바랄 게 없는 한 해였다. 프로야구 KT 위즈 소형준은 그러나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고 했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공을 던지지 못했다는 거다.
소형준은 명실상부한 올해 최고 신인이다. 정규시즌 최우수 신인선수(신인왕) 투표에서 560점 만점에 511점을 받았다. 2위 홍창기(LG 트윈스·185점), 3위 송명기(NC 다이노스·76점)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성적이 수상 이유를 증명한다. 올해 26경기에서 13승(6패)을 올렸다. 국내 투수 최다승이다. 고졸 신인으로는 역대 9번째이자,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현 토론토 블루제이스) 이후 14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도 3.86으로 준수하다. KT는 ‘괴물 신인’을 선봉장 삼아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다.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역사적인 KT의 가을 야구 첫 경기 선발도 소형준이었다. 그는 플레이오프(PO) 1차전 마운드에 올라 ‘가을의 골리앗’ 두산 베어스 타선을 6과 3분의 2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14년 전 류현진을 연상케 하는 배짱투였다. KT가 2-3으로 패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소형준에게 쏟아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더는 칭찬할 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모처럼 국가대표급 투수가 나온 거 같다. 내가 선수였을 때보다 훨씬 잘했다”고 흐뭇해했다. 적장인 김태형 두산 감독조차 “웬만해선 신인 투수를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 낼 수 없다. 그런데 소형준을 보니, 이 감독이 1차전 선발로 쓴 이유를 알겠더라”고 감탄했다. 소형준이 ‘올해의 신인’을 넘어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로 발돋움할 만큼 성장했다는 얘기였다.
다만 리그를 들썩거리게 한 이 신인 투수의 피칭을 많은 야구팬이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수많은 관중이 모인 잠실구장(LG전)에서 ‘괴물’의 탄생을 알린 류현진과는 달랐다. 소형준이 데뷔전을 치른 5월 8월 수원 KT위즈파크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다.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를 치르던 시점이었다.
시즌 도중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았다. 고교 선수들이 꿈꾸던 프로야구 만원 관중의 함성은 올해 신인들에게는 다른 세상 얘기였다. 소형준이 데뷔 후 가장 많은 관중을 만난 경기는 바로 PO 1차전. 관중석의 50% 입장이 허용돼 총 8200명이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
당사자도 아쉬움이 크다. 소형준은 시즌 도중 승리 투수가 될 때마다 “팬들의 박수와 응원이 없어 아쉽다. 야구장에 팬들이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소감을 밝히곤 했다. 신인왕 수상 후에도 마찬가지다. 올해 가장 뜻깊은 경기로 데뷔전을 꼽은 뒤 “처음으로 팬들이 입장한 가운데 던졌던 경기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강조했다.
내년 시즌 가장 큰 희망도 그 연결선 위에 있다. 소형준은 “다음 시즌엔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올해보다 더 많은 팬 앞에서 공을 던져보고 싶다”고 말했다. “팀이 또 포스트시즌에 올라 더 많은 팬 앞에서 더 오래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품었다. 소형준은 “시즌 초반 잘 던지다가 체력적 한계로 주춤하는 시기가 왔다. 감독님 배려로 휴식한 덕에 후반기에 다시 자신 있는 투구를 했다. 내년엔 풀타임을 뛸 수 있도록 비시즌 동안 체력을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2021시즌, 더 강해진 2년차 투수 소형준이 마운드 위로 쏟아지는 함성과 환호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