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에서 잠실까지 전철 타고 오셨다고요? 노선 복잡한데. 감독님, 이젠 서울 사람 다 되셨네요.” “허허. 이래 봬도 서울에 15년 살았다고. 그런 박 매니저는 수원 사람이잖아.”
2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프로축구 서울 이랜드 정정용(51) 감독과 박현우(27) 매니저가 주고받은 대화다. 1990년대생 막내 직원과 아버지뻘인 대구 출신 정 감독은 격의 없이 장난을 쳤다. 선수단 평균 연령 만 24세. 이랜드 수평적 분위기의 단면이다.
이랜드는 올해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2018년부터 2년 연속 최하위(10위)였다. 지난해에는 36경기에서 달랑 5승이었다. 올해는 27경기에서 11승이다. 3위 경남FC, 4위 대전 하나시티즌과 승점이 같았지만, 다득점에 밀려 5위였다. 지난달 최종전에서 전남 드래곤즈와 무승부(1-1) 대신 승리였다면, 3위가 돼 승격 플레이오프에 나설 수 있었다.
정정용 감독이 프로 감독 첫해에 이뤄낸 성과다. 그는 지난해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등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거치며 지도력과 성과를 보여줬다. 그는 “선수들이 노력했다. 성적 내는 건 내 몫이다. 프로 1년 차 초보 감독이라 경험이 부족했다. 내가 좀 더 치고 나갔다면 선수들이 더 발전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2012년 홍명보 감독의 올림픽대표팀은 조리사까지 ‘원 팀’이었다. 이랜드는 끈끈한 맛이 좀 부족했다. 그래도 ‘이제 프로팀 같다. 뭐든 의욕적으로 하려 한다’는 게 주변 평가”라고 덧붙였다.
K리그 1, 2(1, 2부)를 합쳐 22개 팀 중 이랜드는 대구FC와 함께 가장 젊은 팀이다. 이랜드에는 이렇다 할스타 선수도 없다. 이상민(22)·김태현(20)·고재현(21) 등 정 감독이 연령별 대표팀에서 가르친 제자가 팀의 주축이다. 정 감독은 “(선수들이 어려서) 22세 이하 의무 출전에 관해 걱정한 적이 없다. ‘선수를 임대로 보낼 테니 키워달라’는 말도 듣는다. 선수들의 축구가 느는 걸 보면 보람차다”고 말했다.
한창 승격을 위해 순위 경쟁이 한창이던 10월, 이상민과 김태현이 올림픽팀에 차출됐다. 정 감독은 “김학범 감독님이 전화하셨길래 ‘더 뽑을 선수 없으세요’라고 물어봤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해봐 그 사정을 잘 안다. 그런 내가 차출을 반대하면 이율배반”이라고 말했다. 이랜드는 이상민과 김태현이 빠지고도 부천FC을 3-0으로 이겼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프런트 출신 김은영 이랜드 사무국장은 “감독님은 3가지 장점이 있다. 경청, 공감, 3인칭 리더십이다. 늘 ‘내 축구’가 아니라 ‘이랜드 축구’라고 한다. 또 자신이 기준이 아니라 선수·코치·스태프를 먼저 놓는다”고 말했다.
시즌 내내 무성했던 백발이 말해주듯, 고충이 없을 리 없다. 정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은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반면 프로팀은 또래끼리가 아닌 중고참까지 같이 묶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대표팀 감독 때는 명절선물 같은 게 없었는데, 프로팀에 오니 선수들이 생일도 챙겨주더라"라며 웃었다.
승격 플레이오프를 지켜만 본 정 감독은 “마냥 부러워 본 게 아니다.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상대팀 변화를 지켜봤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바로 새 시즌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종전 이틀 뒤, 정 감독은 온종일 선수 32명과 1대1로 미팅했다. 미팅에서 “선생님이 보기엔 이런 게 더 발전해야 한다” 등등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프로 2년 차 감독의 목표는 뭘까. 정 감독은 “U-20 월드컵 준우승 이유를 생각해봤다. 목표가 4강이었는데도 아쉬움이 남더라. 당시 선수들은 ‘목표는 우승’이라고 했다. 지도자도 꿈을 말해야 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지를 생각이다. 내년 콘셉트는 결과, 즉 승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