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 경남FC 감독은 경험 부족 우려를 씻고 성공적인 사령탑 데뷔 시즌을 치렀다. 다음 시즌 목표는 K리그1 승격이다. 김경록 기자“속상하고 아쉽냐고요? 전혀요. 좋은 경험을 했고 동기부여도 잘 됐어요. 다음 시즌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축구아카데미에서 만난 설기현(43) 경남FC 감독의 축구 실력은 여전했다. 공을 정확히 골대로 차넣는 모습에서 공격수로 명성을 떨친 현역 시절이 떠올랐다. 이젠 지도자로서도 자신감이 엿보였다.
표정과 목소리에서 내년 K리그1(프로 1부리그) 승격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경남은 지난달 29일 열린 K리그2(2부) 승격 플레이오프(PO)에서 수원FC와 1-1로 비겼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1-0으로 앞섰지만, 후반 49분 반칙으로 페널티킥 골을 내줘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리그 규정에 따라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친 수원이 3위 경남을 제치고 1부리그에 올라갔다.
간발의 차로 승격 문턱을 넘진 못했지만, 설 감독의 축구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시즌 K리그1에서 11위에 그쳐 2부로 강등된 경남에 부임해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프로 무대 초보 사령탑치고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게 구단 안팎의 공통 반응이다. 설기현 감독은 “90분간 냉정을 유지했는데, 마지막 4분을 놓쳤다. 신고식을 호되게 치렀으니, 2년차에 접어드는 내년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설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다. 고비였던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후반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뜨거운 인기도 누렸다. 광운대 재학 중이던 2000년 과감하게 유럽 무대(벨기에)에 도전장을 낸 선택이 적중했다. 앤트워프(00~01년), 안더레흐트(01~04년)를 거쳐 당시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팀이던 울버햄턴(04~06년)으로 옮겼다. 2006년 레딩으로 이적해 프리미어리거(1부)의 꿈을 이뤘다.
지도자로 거듭난 이후에도 과감한 도전을 이어갔다. 성균관대(2015~18년)를 이끈 게 감독 이력의 전부지만, 두려움 없이 경남의 감독 제의를 수락했다. 대신 경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축구계 7년 선배 김종영(50) 수석코치를 발탁했다. 배경이나 명성, 친분을 배제하고 실력을 우선시하는 거스 히딩크 감독식 결정이다. 코칭스태프도 철저히 실력 위주로 꾸렸다. 설 감독은 “2002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 감독님께 배운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했다. 경남도와 구단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설명했다.
훈련 방식부터 바꿨다. 팀 훈련 메뉴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뺐다. 프로선수라면 근력은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합숙도 없앴다. 경남 선수들은 홈 경기 당일 단체 이동이 없다. 각자 집에서 컨디션을 조절한 뒤, 자율적으로 경기장에 출근한다.
설 감독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동안 ‘프로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집에서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장으로 오는 게 (숙소 생활보다) 경기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현역 시절 경기를 앞두고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반드시 골을 넣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설명했다.
그라운드에서는 ‘변화무쌍한 공격 축구’를 지향했다. 설 감독은 “많은 팀들이 상대 공격 전술에 따라 우리 수비진을 맞추려 노력하는데, 나는 정반대다. 상대 수비 라인의 특징을 분석한 뒤 끊임없이 공격을 변형해 괴롭힌다. 어려운 방식이지만, 잘 자리 잡으면 더 재미있고 효율성 높은 축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시즌 초반엔 ‘설기현식 축구’가 다소 삐걱거렸다. 개막 후 12경기에서 2승에 그치며 혹독한 신고식을 했다.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며 비로소 틀이 잡혔다. 특유의 공격적인 축구가 살아나며 경남은 27경기에서 42골을 몰아치쳤다. ‘K리그2의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주목 받았다.
경남 팬들은 설 감독 특유의 유럽식 공격 축구를 ‘설 사커(Seol soccer)’라고 부른다. 설 감독은 “초보 감독이 데뷔 시즌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인정 받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내년엔 ‘설 사커’를 더욱 강력하게 업그레이드 해 K리그1 승격에 도전하겠다. 기대해도 좋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