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개봉을 예고했던 영화들이 속속 백기를 들고 있다. 디즈니부터 CJ엔터테인먼트까지, 국내외 대형 배급사들의 기대작이 대부분 올해 개봉을 포기했다. 규모가 큰 영화뿐 아니라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등 소규모 작품들도 계획을 변경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는 '소울(피트 닥터·켐프 파워스 감독)'의 개봉을 1월로 미뤘다. '소울'은 제73회 칸 영화제와 25회 부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자,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픽사의 신작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북미에서는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로 방향을 틀었으나,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개봉해 한국 관객과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고, 극장 문을 9시 이후 열지 못하게 되자 고심 끝에 결국 12월 개봉을 포기했다.
이보다 앞서 영화 '서복'이 먼저 12월 개봉 포기를 선언했다. CJ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으로 연말 성수기 극장가의 화려한 부활을 고대하게 만들었던 '서복'은 "추후 개봉 일정은 다시 안내하겠다"며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서복'은 2012년 '건축학개론'으로 개봉 당시 멜로영화 역대 최고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이용주 감독의 신작이자 공유와 박보검의 첫 호흡으로 뜨거운 기대를 모았다. 공유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 개봉 준비를 착착 해나갔으나, 언제 관객 앞에 서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서복'이 백기를 들자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인생은 아름다워(최국희 감독)'도 개봉을 잠정 연기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측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전국적 확산으로 사회 전반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 깊은 고심 끝에 연기를 결정하게 됐다"고 알려왔다. 류승룡과 염정아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 최초의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로 화려하게 승부수를 던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에 '일단 후퇴'를 외쳤다.
이처럼 대형 작품뿐 아니다. 저예산 음악영화 '뮤직 앤 리얼리티'는 10일에서 23일로 개봉일을 변경했고,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도 17일로 개봉일을 정했다가 잠정 연기했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독일 영화 '걸',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코미디 영화 '워 위드 그랜파', 일본 극장에서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도 일정을 멈췄다. 심지어 재개봉작인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12월 제대로 된 신작은 10일 개봉한 '조제(김종관 감독)'와 23일 개봉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워너브러더스의 DC 히어로물 '원더 우먼 1984(패티 젠킨스 감독)'다. 연말 시즌 무비이기에 30일 개봉할 수밖에 없는 '새해전야(홍지영 감독)'까지 포함한다면 세 편이다. 이들 작품이 극장 정상화를 견인한다면 반가운 일이겠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국내 극장가의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사흘째 극장을 찾은 총 관객수는 2만 명대에 불과했다. 박스오피스 1위 작품도 하루 1만 명도 동원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집계된 올해 관객수는 5840만 명. IMF 직후인 1999년(5470만 명)~2000년(6460만 명) 수준과 비슷하다. 극장 관객수가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이야기다.
극장은 살기 위해 명작 재개봉 카드를 꺼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 컷' 등이 다시 스크린에 걸린다.
이에 CGV는 재개봉작만을 상영하는 특별 상영관을 오픈하기로 했다. CGV 김홍민 편성전략팀장은 "코로나19로 신작 개봉이 어려워짐에 따라 신작에만 의존하지 않는, 관객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며 "이러한 고민 끝에 나온 새로운 시도로, 보고 싶은 영화를 극장에서 즐기려는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