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혁(31·두산)과 양의지(34·NC), 두산의 전·현직 포수들의 인연은 2020 한국시리즈(KS)를 달군 흥행 요소였다. 양의지가 NC 유니폼을 입고 친정 팀에 칼끝을 겨눴고, 박세혁은 최고 포수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세혁은 잘했다. 큰 실수 없이 안정감 있는 안방 수비를 보여줬다. 도루 저지율(60%)도 좋았다.
양의지는 더 잘했다. 타석에선 0.545의 타율을 기록했고, 마스크를 쓰고 젊은 투수들의 호투를 이끌었다. NC는 먼저 4승(2패)을 거두며 우승했고, 양의지는 시리즈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양의지는 박세혁이 넘어야 할 산, 지워야 할 그림자다. 2020년의 실패를 2021년의 성장 밑거름으로 삼을 생각이다. 박세혁은 양의지와의 실력 차를 인정하면서도 KS에서 얻은 배움에 의미를 부여했다. 수비력만큼은 뒤지지 않았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박세혁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을 돌아보고, 2021년 각오를 전했다.
-지난해 NC의 KS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팀(두산) 경기력의 기복이 컸다. 그러나 막판 순위 경쟁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며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고, LG와의 준PO와 KT와의 PO 모두 잘해냈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승하지 못했지만 6년(2015~2020시즌) 연속 KS 진출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양의지와의 맞대결이 큰 관심을 모았다. "KS 진출이 결정됐을 때부터 의지 형과의 대결 구도가 주목받을 거라고 예상했다. 한국 야구에서 첫째로 꼽히는 포수와 비견된 자체가 뿌듯하다. 내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면 그런(맞대결) 말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열심히 운동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으로 상대한 양의지는. "역시 좋은 선수, 좋은 포수, 그리고 좋은 선배였다. KS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지 않았나. 모든 면에서 감탄했다. 나는 '방망이'로는 견줄 수 없었다. 수비에서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도루 저지도 곧잘 했고."
-2020 KS에 의미는 뭘까. "내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2020 KS를 통해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의지 형과는 각별한 사이다. 연락도 많이 하고, 배울 점은 배운다."
-김민규·이승진 등 젊은 투수들의 활약을 이끌었다. "두산에는 잠재력이 큰 투수들이 많다. 특히 지난해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강속구 투수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견고한 불펜진이 구축되리라 기대한다. KS 종료 뒤 투수 후배들에게 '올해(2020년) 패배를 분하게 생각하자'고 말해줬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2020시즌 부진했던) 이영하도 절치부심하고 있다. 두산 마운드는 더 강해질 수 있다."
-2020시즌 개인 경기력을 돌아본다면. "기복이 컸다. 무릎·허리 등 부상도 있었다. 성적도 아쉽다. 포수로서 수비 이닝(879⅔)도 2019년(1071⅔)보다 많이 줄었고,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했다. 정규시즌 도루 저지율(19.2%)도 저조했다."
-시즌 초에는 경기 중 교체되거나 벤치를 지킬 때도 있었다. "김태형 감독님께서 주전 포수에게 기대하는 역량과 덕목이 있다. 내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채찍질을 해주신 것 같다. 그래도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믿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선수로서)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투수에게 확신을 주는 포수'가 돼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런 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즌 막판 순위 경쟁이 치열할 때 '내가 (투수를) 더 와일드하게 이끌 필요가 있구나'라고 절감했다. 그걸 실천하면서 나도 더 단단해진 것 같다. 특히 2020 포스트시즌은 준PO부터 치렀기 때문에 매 경기 값진 경험이었다. 많이 배웠고, 자신감도 생겼다."
-2020년 수확은. "마운드가 시즌 종착지에 다가설수록 안정감이 생겼다. 정규시즌 팀 평균자책점(4.31) 1위로 마친 게 가장 큰 성과였다."
-새 외국인 투수(미란다, 로켓)들이 비자 발급 문제로 스프링캠프에 늦게 합류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도 처음 호흡을 맞추는 외국인 투수들(알칸타라와 플렉센)과 한 시즌을 치렀다. 그들의 장점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 부진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 노하우가 생겼다. 미란다와 로켓의 영상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캠프가 시작되면 전력분석팀으로부터 더 많은 데이터를 받아볼 생각이다."
-스프링캠프 각오는. "지금도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따뜻한 날씨에서 훈련할 순 없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상 없는 2021시즌을 보내겠다. 보강·재활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철저하게 할 생각이다. 타격 성적도 반드시 향상돼야 한다. 지난해 막판 수비 감각이 너무 좋았다. 그걸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 자신을 믿고 2021년을 보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