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프라이부르크-도르트문트전 후반 4분, 프라이부르크 정우영(22)이 아크 부근에서 동료의 패스를 받아 지체 없이 왼발 슛을 때렸다. 공은 회전이 걸리지 않은 채 미사일처럼 23m를 날아가 골문 왼쪽에 꽂혔다. 왼발 슛도 오른발 슛만큼이나 강력했다. 7일 열린 2020~21시즌 분데스리가 20라운드 홈 경기에서 정우영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팬들은 “손흥민을 잇는 양봉업자가 나타났다”고 반겼다. 도르트문트는 검정-노랑 유니폼을 입어 꿀벌을 연상시킨다. 손흥민(29·토트넘)은 그런 도르트문트에 유독 강해 ‘양봉업자’로 불렸다. 손흥민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9골을 터트렸다. 정우영도 손흥민처럼 ‘꿀벌군단’을 맞아 꿀맛 같은 골맛을 봤다. 분데스리가에서 실력을 쌓아 더 높은 무대로 올라간 손흥민이 정우영에게는 닮고 싶은 모델이다.
도르트문트는 엘링 홀란드, 마르코 로이스, 제이든 산초 등 스타가 즐비하다. 프라이부르크보다는 강호로 평가된다. 그런 상대를 맞아 정우영은 4-4-2포메이션의 중앙 섀도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다. 후반 25분 교체될 때까지 70분간 뛰었다. 선제골만이 아니었다. 후반 7분에는 발뒤꿈치 패스로 조나단 슈미트의 추가골에 힘을 보탰다. 프라이부르크는 2010년 이후 11년 만에 도르트문트를 꺾고 8위(8승 6무 6패)로 올라섰다. 후스코어드닷컴은 정우영에게 양 팀 최고 평점인 7.9점을 줬다.
정우영의 올 시즌 목표는 5골이었다. 그런데 벌써 3골을 터트렸다. 지난해 12월 13일 빌레펠트전에서 칩슛으로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뽑았다. 지난달 24일 슈투트가르트전에서는 왼발슛으로 2호 골을 기록했다. 2017년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그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찾아 2019년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했다. 그간 주로 교체 선수였다가, 최근 3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했다.
무엇보다 정우영의 몸이 확 달라졌다. TV 중계에서도 역력히 나타난다. 정우영은 최근 중앙일보 화상 인터뷰에서 “분데스리가는 힘과 피지컬이 남다른 ‘상남자’ 축구다. 코로나19로 쉴 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2㎏ 쌀 포대를 들고 팔 근력운동도 했다”고 전했다. 유럽 빅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보내고 있다.
걱정할 정도로 ‘부상 투혼’도 마다치 않는다. 정우영은 지난달 슈투트가르트전 도중 상대 팔꿈치에 맞아 얼굴이 찢어졌다. 상처를 스테이플러로 찍고 다시 뛰었다. 지난해 12월 헤르타 베를린전에는 손가락이 골절됐는데도 붕대만 감고 뛰었다. 그는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는 데 참고 뛰었다. 내게는 1분 1초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56·독일) 프라이부르크 감독은 정우영에게 “‘붐붐차’를 아는가. 그처럼 일대일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붐붐차’는 분데스리가 시절 차범근(68)의 애칭이다. 정우영 역시 차범근처럼 저돌적으로 뛰려고 한다. 그는 이강인(20·발렌시아)과 함께 23세 이하(U-23) 선수가 나서는 도쿄올림픽 출전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