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7년과 1999년 아시아선수권 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올림픽 남녀 농구 사상 최초의 트리플 더블, 어시스트왕 10회….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로 불리는 전주원(49) 아산 우리은행 코치가 선수 시절 거둔 성과다. 코치로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위성우 감독과 함께 일궈내는 등 그는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했다. 전주원 코치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결코 운만으로 이룰 수 없었던 성과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가 2021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전주원 코치는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본선에 나설 여자농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구기 단체 종목 첫 여성 사령탑이다. 수식어가 화려한 만큼 부담도, 책임감도 큰 자리다. 전망은 밝지 않다. 여자농구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게 됐지만, 스페인(세계 3위)·캐나다(4위)·세르비아(8위)와 같은 조에 묶였다. 한국은 19위다. 험로 앞에서 전주원 코치는 씩씩하다. 아직 농구 시즌이 진행 중이라 '감독' 말고 '코치'로 불러 달라는 그와 인터뷰 했다.
-여자농구 사령탑을 맡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원할 때부터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주변의 권유를 많이 받았다. 감독이 부담스럽고 무거운 자리인데, '여성 최초 올림픽 구기 단체 종목 올림픽 사령탑' 같은 수식어까지 붙어서 아무래도 더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수식어가 아니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강팀과 붙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건 조추첨 전에도 예상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않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길을 걸었어도,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선수 시절 기억 때문에 기대가 클 거고, 그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이 점을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성과가 있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 운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기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감독은 욕먹는 자리니까 잘 못 하면 욕은 내가 먹어야지."
-대표팀에서도 위성우 감독을 보좌한 바 있다. "팀(우리은행)에서보다 최소 다섯 배 이상, 열 배쯤은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것 같다. 나는 아마 위성우 감독님보다 열 배는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웃음) 난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다. 부담감, 책임감을 당연히 느낀다. 아무리 어려워도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아직 정해진 건 하나도 없지 않다. 일단 시즌이 끝나야 선수 구성을 할 수 있다."
-감독 발표 후 위성우 감독이 따로 해준 말이 있나. "우리 감독님, 경상도 남자시잖아요?(웃음) '축하한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잘 도와줄게'라고 하시더라. '시즌 끝나면 난 뭐하지'라고 하시기에 '감독님, 전 시즌 끝나고 또 시작이에요. 숨이 막힐 것 같아요'라고 했다."
-우리은행과 대표팀에서 '투잡'을 뛰게 됐다. "태극기는 언제 달아도 영광스럽다. 그만큼 책임감이 크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자리다. 내가 걱정하는 건 선수들의 몸 상태다. 시즌을 끝내고 충분한 휴식 없이 올림픽에 가야 한다. 벌써 전술 얘기를 하긴 좀 그렇다. 그저 선수 한 명 한 명이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일단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뛰는 건 선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올림픽은 예전에 나갔던 그 어떤 대회와도 다르게 느껴질 거다. 본선 티켓을 따냈다는 것, 세계 12강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잘한 거다. 자부심을 갖고, 많이 배울 기회니까 마음가짐도 단단해야 한다. 나도 선수 시절 세계선수권, 올림픽 같은 대회에 나가서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국내에서 다들 내로라하는 선수들인데 국제대회에서는 아니니까…. 나중에는 그런 경험이 쌓여서 잘하게 되더라. 이 멤버들이 계속 국제대회 경험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성적을 낼 수 있다. 우리도 그랬다. 어릴 때부터 같이 했던 멤버들이 시드니 올림픽(4강)에서 성적을 낸 거니까."
-전주원 '감독'에게 2021년은 어떤 해가 될까. "굉장히 도전적인 해가 될 것 같다.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면 아마도 내겐 살면서 잊지 못할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말이다. 이왕이면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일간스포츠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한다. "2021년은 모두에게 좋은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에게 복이 많은 해였으면 좋겠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든데, 그래도 다들 행복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