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령(33)은 2014년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에 캐스팅돼 대본 리딩까지 마쳤지만 서툰 연기력에 발목이 잡혀 하차했다.
당시 아무런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는 배우에게 큰 자리를 내 준 것도 신기했지만 리딩까지 마친 후 배우가 교체됐다는 점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8년이 지나 다시 온 기회를 잡았다.
시즌1이 끝난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절필을 선언한 임성한 작가의 5년만에 작품이자 이가령에겐 8년만에 다시 온 행운이다. 극중 기괴할 정도로 눈두덩이를 시커멓게 칠한 메이크업과 '저런 옷을 집에서 입나' 싶은 패션으로 본의아니게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시즌1 종료 후 휴식 시간도 없이 곧바로 시즌2 촬영에 돌입했다. 새까만 눈덩이를 지우고 만난 이가령은 "데뷔 후 첫 인터뷰에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지 몰랐어요"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임성한 작가와 결국은 다시 만났다. "두 번의 인연이 있었다. '압구정 백야'를 했을 때 주인공 기회를 줬지만 그때 연기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준비도 부족해서 불발됐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쉬웠다. 이후 짐은 이니지만 작가님에게 꼭 좋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임성한 작가와 꾸준히 연락을 했나보다. 이번엔 어떻게 캐스팅됐나. "작가님이 원래 배우들과 왕래가 없다. 또 '압구정 백야' 이후에 절필 선언을 하지 않았나. 작품을 안 하니깐 배우 이가령이 아닌 그냥 사람으로 연락을 받아준 거 같다. 자주 못 뵙고 명절 때마다 안부인사를 하는 게 전부인데 작가님이 작품을 다시 할 줄 몰랐고 다시 불러줄 줄은 더욱 몰랐다. 이번엔 제작사를 통해 연락이 왔고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하게 됐다."
-세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사실 이렇게 큰 역할인 줄 몰랐다. 또 나도 공백기가 꽤 길었고 그동안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한다.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느낌이라 막연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마냥 신나서 어떻게든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면서 부담감이 커졌다. 그동안 일에 대한 갈증이 너무 커서 현장에서 작품하고 있는 게 너무 즐거웠다."
-8년간 뭐하고 지냈나. "아예 작품을 안 한건 아니다. 1년에 한 두 작품 참여했다. 눈에 많이 띄지 않아서 그렇지 광고도 많이 했다."
-어떤 광고인가. "흔히 아는 대기업이나 유명 브랜드 광고 모델이 아닌 많은 광고가 있다. 그렇게 작업을 꾸준히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쉴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생계 유지가 가능했나. "살아가는데 무리 없을 정도로 벌었고 남들 쇼핑다닐 때 지하철 세 번 갈아타면서 일했다. 그때 번 돈으로 버텼다. 돈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도 했다. 20대때 쉬지 않고 일했다."
-아예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 수도 있었을텐데. "다른 일을 해야하나 마음을 먹으면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그래서 일을 놓지 않았다. '다른 일은 못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마냥 기다렸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과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역할이다. 어떻게 해석했나. "너무 사랑받고 싶은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욕을 먹는게 꼭 내가 욕먹는 것처럼 마음이 좋지 않더라. 캐릭터는 작가님이 구체적으로 써준다. 글만 봐도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이구나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러니 나도 대본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부혜령은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지만 이 친구가 아예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 아니다. 지금 30대 중에서도 부혜령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실제 본인의 성격이라면. "부혜령과 비슷한 부분이 분명 있다. 남들 앞에 보여지는 직업이다보니 솔직하려고 하지만 또 그게 신경 쓰인다. 나도 실제로 의사표현에 솔직하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않나."
-실제 결혼 후 남편이 바람을 핀다면. "대본을 보면서 그 생각을 해봤다. 같이 살아도 열 받을 것 같고 남에게 보내는 것도 화나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결정은 못하고 화만 나는, 딱 그 마음이지 않을까. 모든 강인한 여자도 사랑 앞에서는 무너질 것이다."
-미혼인데 연기를 하며 결혼관이 바뀌었는지. "음 고민은 된다. 한 사람이랑 평생을 같이 살지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결혼을 늦게 해서 30대 후반에 한다고 해도 50년을 같이 살아야하는데 사랑이란 감정이 오래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사랑과 정은 다르지 않나.(웃음)"
-드럼 치는 장면도 실제 소화했다. "연습을 많이 했다. 작품이 없으니 집중할 게 없었다. 임성한 작가님께 드럼 배우고 있다 하니 열심히 연습해라고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대본을 받았는데 드럼을 치는 장면이 있어 놀랐다."
-눈화장이 굉장히 화제다. 임성한 작가의 주문이었나. "작가님은 부혜령이 런웨이에서 막 튀어나온 느낌을 원했다. 그만큼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메이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스모키 메이크업을 시도했다. 평소엔 선크림도 잘 안 바르고 다닌다. 시청자들이 '저런 화장을 하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많이 반응하는데 그걸 원했다. 또 눈두덩이 피부가 얇아 알러지가 생기고 헐기까지 했다."
-그 정도면 맨얼굴이 어색하지 않나. "민낯을 요하는 장면이 있었고 마지막회도 그랬다. 맨얼굴에 나도 놀랍더라. 어느덧 눈 밑까지 아이라인을 그리는 나를 발견했다."
-'막장' 작가인데 시즌2를 염두해서인지 내용이 많이 늘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 반응이 있긴 했지만 작가님에겐 장면 하나하나 계획이 있다. 전체 스토리를 생각하고 썼기에 시즌2를 염두해두고 늘어진건 없다. 작가님은 치밀하다."
-극 초반 성훈의 불륜녀가 누구인지 몰랐나. "정말 우리도 모른다. 대본을 봐야 알 수 있다. 우리끼리도 수군거린다."
-성훈과 호흡은 어땠나. "기댈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첫 촬영때 뺨을 때리는 신이었다. 인사하고 대화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뺨을 때려야하니 미안했다. 20번 정도 때렸다. 나중엔 목에 손자국이 났는데 그걸 OK로 썼더라. 아파서 화가났을텐데 불편하지 않게 리드해줘 잘 촬영할 수 있었다."
-시즌2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오나. "지금 대본이 4회까지 나왔고 촬영에 한창이다. 부혜령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캐릭터는 그대로 가고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궁금하다. 이혼을 하게 되는지 성훈을 용서해주는지 촬영하는 우리도 궁금하다."
-장년층이 많이 보는 드라만데 많이 알아보나. "세트장에서 밥을 먹고 외부에 나갈 일이 없다보니 누군가의 반응을 알 수가 없다. 집 앞 슈퍼마켓을 가도 알아보지 못 하는 눈치다. 메이크업을 안 해서 그런가.(웃음)"
-넷플릭스서도 방영되는데 외국인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SNS에 외국인들이 와서 각국의 나라 언어로 댓글을 적는다. 물론 알아듣지 못 하는 말도 많은데 그 중에 어눌한 한국어로 글을 남겨 따라 들어가보면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더라. 내 화장법에 놀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