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밤, 지상파의 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기성용(32·FC 서울) 성폭력 의혹 사태 '2차 대전'이 발발했다. 기성용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현해 눈물을 흘리며 폭로전을 이어갔다. 방송은 이 사태를 목격한 또 다른 인물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논란은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17일 오후 기성용 측이 반격에 나섰다. 폭로자들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빨리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오는 26일 이전에 법적 조처를 하겠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또 한 번의 폭풍이 몰아친 이 날 늦은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서울과 광주 FC의 K리그1(1부리그) 5라운드가 펼쳐졌다. 기성용이 올 시즌 처음으로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2차 대전'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다. 지난 2경기 연속으로 풀타임을 뛴 그의 체력 안배를 위한 배려였다.
기성용은 후반 시작과 함께 그라운드에 나섰다. 전반전 주도권은 광주가 잡고 있었다. 그러나 기성용이 투입된 후 분위기는 서울 쪽으로 넘어갔다. 기성용은 1-1로 맞선 후반 39분 아크 중앙에서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역전 결승 골을 뽑아냈다. 서울의 2-1 승리.
기성용은 두 경기 연속 결승 골을 터뜨리며 서울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렸다. 성폭력 의혹 논란이 기성용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상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논란이 커질 때마다 기성용은 그라운드에서 더 강해졌다. 전북 현대와 개막전에서 전반 36분 만에 교체 아웃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을 뿐, 이후 4경기에서는 기성용의 '클래스'를 느낄 수 있었다. 수원 FC와 2라운드에서 전매 특허인 중거리 택배 크로스로 도움을 올렸고, 성남 FC와 3라운드에서는 시즌 첫 풀타임을 소화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4라운드는 기성용의 저력을 잘 보여줬다.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44분 기성용은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극적인 결승 골을 터뜨렸다. 이 기세는 광주전까지 이어졌다.
광주전이 끝난 후 한 K리그 출신의 축구인을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진실은 모른다. 진실 여부를 떠나 경기력을 보고 있으면 기성용의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폭로자들의 말은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제3자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줄 정도의 '말 폭탄'이 터지고 있다. 진실이 가려지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기성용은 따가운 시선과 매일 맞서고 있다. 팀 동료, 구단, 팬 그리고 가족까지 상처받고 있는 참혹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법적 조치를 예고했으니 준비할 것도 많다. 흔들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기성용은 단단하다. 자신을 옥죄는 외부의 많은 변수 속에서도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의 냉정함과 승리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지난 10여년간 기성용이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원동력으로 볼 수 있다. K리그 스타, 유럽 진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세 번의 월드컵 출전, 센추리클럽 가입 등 그의 커리어는 웬만한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이번 논란 전에도 기성용은 여러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면돌파했다.
기성용은 어떻게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일까. 그는 광주전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내 직업은 프로축구 선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경기장 안에서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일로 흔들린다면 핑계다. 그라운드 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의 직업이다. 그라운드에 서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그라운드 안에서 팬들 앞에 서면 기쁜 마음이 들고, 행복하다. 바깥 상황이 어떻든 이런 게 모티베이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