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수문장 조현우(30·울산)에게 지난해 11월은 축구 인생에서 지우고픈 기억일지 모른다. 대표팀의 유럽 원정 평가전(A매치)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 오스트리아에 건너갔다. 현지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곧바로 동료들과 격리돼 치료를 받았다. 결국 대한축구협회가 현지에 보낸 전세기 편으로 귀국했다.
정상 궤도로 돌아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육체적, 정신적 타격이 컸던 터라 그로부터 한 달 뒤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본선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팀 동료들이 아시아 정상에 등극하는 모습을 TV 중계를 통해 지켜봤다. 당시 조현우는 “무증상이라서 치료는 문제가 없었는데, 격리가 힘들었다. 갇혀 지내다 보니 모든 게 불안했다. 귀국 후에도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신체적으로 힘들었다. 심리 치료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넉 달, 조현우는 다시 대표팀의 일원으로 해외 원정길에 올랐다. 이번 행선지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 언제 어디서든 절대로 지면 안 되는 한·일전이지만, 25일 오후 7시 20분 일본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이번 대결은 통산 80번째 한·일전(A매치)이라 역사적 의미도 남다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만날지도 모를 일본이기 때문에 기선 제압도 필요하다.
조현우는 22일 일본 출국 직전 인터뷰에서 “많은 축구 팬이 (코로나19와 관련해) 대표팀 안전을 걱정해주신 거로 안다. 고마운 팬들을 위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겠다. 일본도, 방역도 모두 이기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유럽 원정 당시 어떤 공이라도 다 막아낼 자신이 있었는데, 바이러스를 못 막았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는 한·일전은 다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경험을 통해 조현우는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 그 첫 번째가 축구다. 그는 “격리 기간에 축구를 너무 하고 싶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지만, 지난겨울 각오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올 시즌 조현우는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빛현우’라 불릴 만큼 눈부신 방어 능력이 여전하다.
여기에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빌드업(수비 지역부터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것)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빌드업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점유율 축구’의 핵심 키워드다. 조현우는 “전부터 롱킥보다는 패스를 좋아했다. (빌드업이 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살짝 움츠러든 경향이 있었는데,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올 시즌에는 더 과감하게 전방으로 볼을 전달하겠다”고 설명했다.
동료에 대한 믿음도 더 커졌다. 조현우는 “올 시즌 홍명보 감독님이 부임한 뒤 울산 선수들이 똘똘 뭉쳤다. 감독은 선수를 신뢰하고, 선수는 그런 감독을 의지하고 따른다. ‘동료와 함께 막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날아오는 공을 향해 과감히 몸을 던질 수 있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현우 별명은 ‘사랑꾼’이다. 가족 사랑이 각별해서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아내(이희영), 아이들(하린·예린)과 울산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한다.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고 칭찬하는데, 사실은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거다. 5년 차 남편(2016년 결혼)이지만, 아직도 아내에겐 멋진 남자이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일본 원정 기간 내내 대표팀 동선을 중심으로 ‘방역 버블’을 구축한다. 우선 선수단은 매일 오전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또 숙소와 훈련장, 경기장 이외의 장소는 출입할 수 없다. 팀 미팅은 사전에 방역을 마친 개방된 공간에서만 진행한다. 숙소는 1인 1실로 했고, 매일 두 차례 이상 객실 전체를 환기한다. 이동 때에도 버스 2대에 나눠타 거리를 유지하고, 일회용 장갑과 체온감지용 손목밴드도 착용한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유럽 원정 당시 방역 실패를 거울삼아 의무분과위원회가 선수단 방역 수칙을 만들었다.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