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지주사가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을 위해 인사위원회를 신설했다.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평가하거나 대표이사·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게 핵심이다. 선진적인 행보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인사위원회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포함돼 있어 실질적인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향후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SK는 30일 이사회를 열고 전날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안건들을 최종 확정했다. 특히 이사회 내 새로 신설된 인사위원회의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2명에 최태원 회장과 이찬근 전 국민은행 대기업금융그룹 부행장,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각각 선임됐다.
최 회장이 인사위원회에 포함되면서 대표이사의 평가나 추천 등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을 여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SK의 경우 2019년 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지만 오너가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아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진 구조다.
2020년 SK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안건 찬성률은 99.7%에 달했다. 100% 가까운 찬성률에 사외이사가 사실상 회사의 ‘거수기’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대 의견이 한 차례 나왔는데, 이를 통해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투자 승인 기준 금액을 자기자본 1.5% 이상에서 1% 이상으로 내려 투자 승인 대상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20년 64개 대기업집단 상장계열사 277곳의 사외이사의 이사회 활동을 분석한 결과 안건 찬성률이 99.53%로 나타났다. 사실상 100%에 가까웠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이사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SK가 대외적으로 선진적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표이사 평가나 선임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주로 오너나 회장이 대표이사를 결정하는 구조를 바꿀 순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삼성의 준법 감시위원회 신설과 비슷하다. 삼성은 이전에도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부서가 있었지만 제 역할을 못했다"며 "SK도 상법상의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의 맥락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외이사를 영입해 독립성을 보장하는 구조다.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막고 경영진을 감시하는 게 사외이사의 역할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외이사는 학계와 관료, 금융 전문가들로 한정돼 있다.
박주근 대표는 “국내 대기업의 사외이사 구성은 학계 35%, 관료 35%, 금융 30%로 분류된다. 관료 출신들의 경우 ‘방패막이’를 위해 데려오고 학계 인사들도 사업의 이권과 관련된 인사들로 구성된다”며 “미국의 경우 사외이사들 85%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재계 출신들로 채워진다”고 말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회사와 대척점에 있는 이사들로 꾸려져 시야를 더욱 확대하고 독립성을 보장하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들의 운신 폭이 여전히 좁기 때문에 ‘거수기’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박 대표는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확보와 법적 책임 도입이 시급하다”고 했다. 오너가 이사회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경영진 감시에 있어서 독립성 확보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법적 책임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롭기 때문에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오 소장은 “미국의 경우 집단 소송제가 있고 법적 책임을 묻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이 주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감시를 철저히 하는 구조다”고 말했다.
이날 조대식 수펙스 추구협의회 의장이 재선임되며 9명의 이사회 멤버가 최종적으로 꾸려졌다. 6년 임기를 끝낸 하금열 사외이사 대신 김선희 대표가 합류했을 뿐 기존 이사회 구성은 전과 동일하다.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는 여성 사외이사로 새롭게 합류했다. SK 관계자는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사업 발굴 측면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여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회사의 소통 능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성 사외이사는 이사회 중 여성 이사 1명을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른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