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지난해 KBO리그에서 부상자명단(IL) 제도를 가장 많이 이용한 구단이다. 정규시즌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40회 넘게 선수들이 IL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리그 평균(29.9회)보다 10회 이상 더 많았다. IL 최소 이용 구단인 롯데(18회)와 비교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제도 도입 첫 시즌부터 불명예스러운 1위였다.
시즌 내내 부상자가 속출했다. 투타를 가리지 않고 아픈 선수들이 쏟아졌다. 선발 벤 라이블리·불펜 노성호·포수 강민호·내야수 이학주·외야수 구자욱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축 선수들이 한 차례 이상 IL을 경험했다. 베테랑 불펜 장필준과 외야수 김헌곤은 한 시즌 IL 등재 최대인 30일을 모두 소진했다. 심지어 외국인 타자 타일러 살라디노는 허리 부상을 이유로 7월 퇴출당했다. 8월 초 허삼영 감독은 "주전이 3명 남았다"고 에둘러 팀 상황을 표현하기도 했다.
주전이 빠진 자리를 백업으로 채우다 보니 매 경기 선발 라인업이 바뀌었다. 삼성은 지난해 정규시즌 137개의 라인업(리그 평균 119개)을 사용해 최하위 한화(14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매 경기 경기력이 널을 뛰었다. 결국 부상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경쟁 동력을 잃었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삼성은 올 시즌 개막도 하기 전에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마자 부상자가 나왔다. 2월 초 포수 김도환(21)이 재활군으로 향했다. 청소년대표 출신인 김도환은 주전 강민호의 백업 1순위 후보였다. 그런데 오른 어깨 부상을 이유로 장기 공백을 갖게 됐다. 2월 11일에는 더 큰 악재가 발생했다. 거포 김동엽(31)이 활배근 부상을 이유로 이탈했다. 김동엽은 지난해 타율 0.312, 20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홈런 1위, 타점 공동 2위에 오른 중심 타자. 그러나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를 모두 뛰지 못하면서 개막전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부상 바이러스는 계속 퍼졌다. 김동엽 부상 닷새 만에 선발 투수 최채흥(26)이 쓰러졌다. 연습경기 등판 후 복부 통증을 느꼈고 검진 결과 복사근이 3.5㎝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8주 이탈. 지난해 13승을 따낸 최채흥은 리그 국내 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였다. 올 시즌 개막전 3선발이 유력했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삼성은 시범경기 마지막 날 프로 2년 차 이승민을 최채흥 대체 선발로 발탁했다. 선발 무게감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겨울 FA(자유계약선수) 최대 50억원을 주고 영입한 1루수 오재일(35)도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오재일은 지난 27일 옆구리 복사근 근육이 찢어져 재활 치료 5주 진단을 받았다. 복사근은 몸통 옆구리 근육으로 민감한 부위이다. 재발 우려도 크다. 김동엽과 오재일이 함께 빠지면서 클린업 트리오에 큰 구멍이 생겼다. 두 선수를 중심 타선에 배치해 화력을 극대화하겠다는 허삼영 감독의 구상은 정규시즌 첫 경기도 치르기 전에 무산됐다.
30일에는 오재일의 백업 1루수가 유력했던 이성규(28)까지 다쳤다. 수비 훈련 중 공을 잘못 밟아 왼발목 인대가 파열, 사실상 전반기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구단 관계자는 "보통 발목 인대 파열은 4개월 정도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 정확한 복귀 시점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전 오재일과 백업 이성규가 함께 재활군으로 향하면서 1루수 자리가 무주공산이 됐다. 삼성은 왼손 불펜 노성호(32)까지 팔꿈치 부상에서 재활 치료 중이다. 허삼영 감독은 "전반기 출전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노성호가 빠지면서 왼손 계투 라인은 임현준 하나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부상엔 여러 종류가 있다. 경기 중 공에 맞거나 타구를 처리하다 다치는 건 불가항력적이다. 하지만 복사근 같은 근육 부상은 '관리'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삼성은 지난 시즌부터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중이다. 허삼영 감독은 지난달 30일 "한 번에 부상이 닥치니까 팀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상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제는 전쟁터에 나가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전쟁터에 가야지만 싸워야 하는 장수가 부족하다. 정규시즌 개막도 하기 전에 삼성이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