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쓴맛'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부드럽고 순한 술을 찾는 저도주 트렌드 확산에 따라 소주 업체들이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있어서다. 다만 일부에서는 도수 조정으로 제조원가도 낮아졌지만, 출고가는 그대로라며 '우회적 가격 인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알코올 도수 또 낮추는 소주 업계
1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최근 파란색 병에 담긴 레트로 콘셉트 소주 '진로이즈백'(이하 진로)의 알코올 도수를 16.9도에서 16.5도로 낮췄다.
진로의 도수 조정은 2019년 4월 출시 이후 처음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지난달 22일부터 진로 소주의 도수를 16.5도로 낮춰 생산하고 있다"며 "기존 재고 상품 소진 후 순차적으로 도수를 낮춘 제품을 출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의 도수 조정을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을 겨냥한 것이라고 본다.
앞서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의 도수를 16.5도로 낮추며 초저도주 시장을 겨냥했다.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 인하는 2019년 11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당시 롯데칠성음료는 기존 17도이던 도수를 0.1도 낮춰 16.9도로 조정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소주를 가볍게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저도화 음용 트렌드가 지속하고 있다"며 "이번 도수 인하도 이에 맞춘 조처"라고 말했다.
실제 소주의 저도화는 전체적인 주류 트렌드다.
소주는 지난 1924년 첫 출시(진로) 당시 35도였다. 하지만 1965년(진로 30도), 1973년(진로 25도), 1998년(참이슬 23도), 2006년(처음처럼 20도) 등 지속해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다. 특히 지난 2006년 참이슬 후레쉬가 19.8도의 제품으로 처음 출시되면서 20도 미만의 소주 시대가 열렸다. 지속해서 낮아진 소주의 알코올 농도는 급기야 지난 2019년 진로(16.9도)와 처음처럼(16.9도)에 의해 17도 선마저 무너졌다.
광고하고 비용 줄이고 '일거양득'
소주 업체 입장에서는 도수 하향 조정은 나쁠 게 없는 조치다.
당장 광고가 가능하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17도 이상 술은 방송 광고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처럼과 진로는 16.5도인 만큼 TV 광고가 가능하다. 앞서 두 제품은 16.9도일 당시에도 광고가 가능했다. 이에 진로는 자사의 두꺼비 모델을 이용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바 있다.
게다가 도수를 낮추면서 주정 사용량 감소로 인한 판매 이익률도 높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소주 도수를 0.1도 내리면 주정값 0.6원을 아낄 수 있다. 도수를 0.4도 내릴 경우 1병당 주정값 2.4원이 절감되는 셈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주류 업체들이 도수 조정으로 우회적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롯데칠성음료와 하이트진로는 이번 처음처럼과 진로의 도수를 낮추면서 제품 출고가는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하이트진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참이슬'의 알코올 도수를 낮췄지만, 이 기간 가격 인상만 한 차례 있었다.
업계는 재료를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도수 인하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는 없다는 반응이다.
업체 관계자는 "집에 주정만 있으면 소주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도수가 내려가도 소주 맛을 구현해내야 하는 레시피와 연구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