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그룹 총수 중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명함’이 가장 화려하다. 보직이 많은 만큼 언제나 ‘10대 그룹 총수 연봉킹’은 신 회장의 몫이 되고 있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 회장은 2020년 롯데지주를 포함해 총 8곳에서 약 150억원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지주에서 가장 많은 35억1740만원을 받았고, 롯데케미칼 35억원, 롯데제과 19억원 등을 받았다. 아무래도 신 회장이 모두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계열사에서 받는 연봉이 많았다.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에서 각 17억3500만원, 13억1300만원을 받았고, 롯데칠성음료·롯데물산·롯데렌탈에서도 각각 10억원의 연봉을 챙겼다. 이처럼 모두 8개 회사에서 받은 연봉 액수만 149억8340만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 10대 그룹 총수 중 단연 최고 연봉이다. 2위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80억800만원와 격차가 컸다. 더군다나 국내 재계 1위인 삼성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무보수 경영을 펼치고 있다.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도입하며 지배구조의 투명화를 추구하고 있는 흐름에서 신 회장의 ‘문어발 보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 시스템이 체계화된 10대 그룹에서 총수가 8개 보직을 갖고 있는 건 신 회장이 유일하다. 보통 총수들은 지주사의 대표이사 외 핵심 계열사 1~2개의 직위를 가질 뿐 대부분은 전문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있다.
그런데도 신 회장은 여전히 '문어발 보직‘을 고수하고 있다. 재계 2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SK와 SK하이닉스(미등기임원)의 직위만 갖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LG그룹 회장직만 맡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민연금 등 기업들의 주요 주주들은 오너가의 '문어발 겸직'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너가 여러 회사의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주근 전 CEO스코어 대표는 “다양한 겸직은 주로 오너가 2세 경영에서 많이 나타난 행태다. 선대 회장에게 경영을 배웠기 때문에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롯데의 경우도 선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3세 오너가들의 경우 다양한 보직을 겸하는 현상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성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다양한 보직을 유지하고 있는 건 그만큼 직접 모든 계열사의 경영을 챙기겠다는 의중으로 읽힌다. 그룹의 시스템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의구심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사업의 특성상 그룹은 식품·유통·화학·관광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다양한 보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신 회장의 연봉이 2019년(156억2700만원)에 비해 16% 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감소한 연봉은 6억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지주를 제외하고 다른 계열사에서의 연봉은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신 회장은 2019년 롯데건설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지만 2020년에는 롯데물산과 롯데렌탈에서 미등기임원으로 20억원의 연봉이 추가되면서 감소분이 대폭 줄어들었다.
롯데지주에서는 실적 악화에도 상여금 4억5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롯데 측은 상여금에 대해 “2019년 근속 기간 성과에 대한 경영성과급이다. 임원 보수 규정에 따라 주총에서 승인한 임원 보수 한도 내에서 매출액, 영업이익 등 회사의 경영 성과와 리더십, 윤리경영, 기타 회사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참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여금 지급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회사 내부의 규정에 따랐다고 하지만 그 부분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으니 주주들과 3자 입장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리더십과 회사 기여도 등 두루뭉술한 기준이 아닌 객관화된 합리적인 연봉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