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차지한 2009년, 당시 대표팀 주축 투수였던 류현진과 김광현, 윤석민은 각각 베이스볼아메리카(BA) WBC 유망주 랭킹 5, 9, 18위에 올랐다. 다르빗슈 유, 아롤디스 채프먼, 다나카 마사히로,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등 훗날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한 선수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성공과 실패는 갈렸지만, 한국 투수 3명은 모두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KBO리그의 슈퍼스타는 MLB의 관심을 받는다. 지나겨울 김하성이 포스팅(비공개 입찰)으로 샌디에이고로 이적했다. 이정후(키움)와 강백호(KT) 등 젊은 타자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이미 언급되고 있다. 벌써 2021시즌 대표 유망주로 뽑히는 장재영(19·키움), 김진욱(19·롯데), 이의리(19·KIA) 역시 마찬가지다.
고교 시절 MLB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았던 이들은 국내 리그를 택했다. 이들은 미래에 MLB 진출을 꿈꿀 수 있다. MLB 눈높이에서 이들은 어느 정도의 유망주일까.
━
'벌크업' 이의리는 아직 성장 중
MLB 구단의 A 스카우트는 “이의리는 광주일고 1학년 때부터 제구와 변화구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반대로 말하면 고교 1학년 이의리는 대형 투수가 갖춰야 할 덕목인 강속구가 없었다. 또 다른 구단의 B 스카우트는 "당시 확실한 3 변화구가 없던 투수"로 그를 떠올렸다. 평가는 성장할수록 변했다. A 스카우트는 “나이가 들고, 몸이 커지면서 이의리의 구속도 빨라졌다. 프로에서 당장 선발이 가능한 자원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의리가 MLB 드래프트에 나왔다면, 체격이 작아 상위 라운드 지명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미국 대학에 진학해 지금처럼 몸을 키웠다면 MLB에서도 충분히 1라운드 지명도 노릴 재능”이라고 이의리의 잠재력을 호평했다.
이의리는 계속 성장 중이다. KIA 입단 후 트레이닝 파트에서 제공한 근·체력 관리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해 체중을 7㎏ 늘렸다. 덕분에 구위도 묵직해졌다. A 스카우트는 “짧은 기간에 구속이 빨라졌고 체인지업도 발전했다. 앞으로도 더 스피드가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B 스카우트는 "확실히 변화구들이 자리 잡는걸 보니 3명 중 신인왕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
━
'완성형' 김진욱, 구속 늘려야
강릉고 시절부터 '완성형 투수'로 평가받았던 김진욱은 프로에서 기대 이상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 장착이 주효했다. 고교 시절부터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제구가 뛰어났는데, 프로에서 너클 커브까지 구사 중이다.
A 스카우트는 “김진욱은 가장 완성도 높은 고교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한편으로는 더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면서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를 던지면 당장 1군 선발 투수가 될 것이라 봤는데, 너클 커브를 장착해 효과를 봤다”라고 평가했다. 투구폼도 개선되었다는 평가다. B 스카우트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더 오버핸드 폼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김진욱이 MLB를 꿈꾼다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구속 향상이다. 첫 등판에서 그의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142.9㎞(이하 스탯티즈 기준)였다. 희소성이 높은 왼손 투수라 할지라도 이 정도 구속으로 MLB에서 경쟁하기 어렵다.
구종 개발도 필요하다. 오른손 타자를 상대하기에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가 더 확실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A 스카우트는 "체인지업 계열 없이 성공하려면 커브와 슬라이더가 모두 리그 최고가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비단 mlb 진출이 아니더라도 프로에서 선발투수로 성공하려면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가 있어야 한다"라며 "슬라이더와 커브를 리그 최고 수준으로 구사하는 것보다야 쉬운 방법이라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
'빛나는 원석' 장재영, 역대급 재능을 제대로 살린다면
신월중학교 시절부터 주목받은 장재영의 잠재력은 역대 최고다. 올 시즌 기록 중인 그의 직구 평균 구속(153.3㎞)은 KBO리그 톱클래스다. 지난해 평균 구속이 150㎞ 이상을 기록한 투수는 이동원(두산·153.6㎞), 안우진(키움·152.3㎞), 알칸타라(kt·151.6㎞), 고우석(LG·150.4㎞) 단 네 명뿐이었다. MLB 드래프트에서도 큰 관심을 받을 만했다. 최고 98마일(157.7㎞)을 던지는 고등학생 투수는 국제 시장을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고교 시절 부상이 약점이다. 덕수고 1학년 때 그의 직구 구속은 이미 150㎞에 육박했다. 그러나 2학년 이후 부상으로 기대만큼의 고교 성적(통산 5승 2패 평균자책점 3.20)을 남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진 '빛나는 원석'으로 평가된다.
A 스카우트도 장재영을 두고 “처음부터 선발은 어렵겠다고 봤다. 그러나 평균 150㎞ 중반의 공을 던지고 커브도 한국에서 보기 힘든 130㎞대 구속을 보여준다. 타자를 상대하기에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장재영의 구위는 MLB 유망주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구위만 보면 탬파베이의 에이스 타일러 글래스노우의 유망주 시절과 유사하다. 글래스노우는 유망주 시절 제구는 불안했지만, 평균 95마일(152.9㎞)의 패스트볼과 MLB 평균 이상으로 통할만 한(plus pitch) 커브를 가지고 유망주 랭킹 10위권까지 오른 바 있다.
물론 글래스노우는 탬파베이 입단 이후 평균 97마일(약 156㎞) 안팎까지 올라간 패스트볼, 83마일(약 133.5㎞) 안팎의 커브에 올 시즌 평균 87.8마일(약 141.3㎞)의 슬라이더까지 정착했다. 올 시즌 3경기 1승 무패 평균자책점 0.46을 기록하며 리그를 평정하는 중이다. 구위도 레퍼토리도 유망주 시절보다 몇 단계 진화했다.
A 스카우트는 “장재영은 2·3학년 때 부상을 입었음에도 MLB 드래프트에서 최소 3라운드에 지명될 수준이라고 봤다. 선발이 가능하다고 평가받았다면 1라운드 지명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제구 안정은 물론 김진욱과 마찬가지로 스플리터나 체인지업이 장착도 필요하다는 전망도 전했다. A 스카우트는 “불펜으로도 MLB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선발이 더 가치 있는 만큼 한국에서 선발로 자리 잡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