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감독을 또 바꿨다. 11일 허문회 감독을 경질하고 래리 서튼 퓨처스(2군) 감독을 제20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롯데는 KBO리그 역사에서 감독을 가장 많이 교체한 팀이다. 1982년 나란히 출범한 KIA 타이거즈(9명·전신 해태 포함)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허 감독의 퇴진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시간문제로 보였다. 성민규 롯데 단장과 허 감독의 불화가 지난해 초부터 계속됐다. 둘의 동행이 1년 넘게 이어진 게 놀랍다면 더 놀랍다.
성 단장은 2019년 말 취임 후 허 감독 영입을 주도했다. 계약 후 "이번 스토브리그 최고의 영입은 단연 허 감독님"이라고 했다. 계약 기간 3년도 파격적이었다. 프로 감독 경험이 없거나 팀 레전드가 아닌 초보 감독은 대부분 2년 계약으로 출발한다. 롯데는 허 감독에게 3년을 보장하면서 장기적으로 힘을 실어주겠다는 모양새를 취했다.
젊은 단장과 새 감독의 의기투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성 단장 취임 첫 트레이드가 발단이었다. 성 단장은 2차 드래프트 2·3라운드 지명을 포기한 뒤 "원하는 조건의 포수가 없었다. 기다려달라. 내가 어떤 포수를 영입하는지 보여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얼마 뒤 선발투수 장시환을 한화 이글스로 보내고 지시완을 데려왔다. 그렇게 영입한 포수였으니, 지시완의 진가를 실전에서 확인하고 싶었을 거다.
허 감독 생각은 달랐다. 스프링캠프를 치르면서 지시완이 1군 포수 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용하지 않기로 했다. 성 단장과 허 감독의 길은 여기서부터 어긋났다. 이후 베테랑 투수 장원삼의 선발 등판을 놓고 또 한 번 부딪혔다. 성 단장은 장원삼을 '추천'했다고 생각했고, 허 감독은 선수단 운영에 '간섭'했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둘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롯데만 단장과 감독의 사이가 나빴던 게 아니다. 거의 모든 팀 단장과 감독은 늘 크고 작은 대립을 한다. 이해관계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성적이 좋은 팀에서도 불화는 생긴다. 단장은 '이 정도 전력을 꾸려줬으면 우승은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감독은 '이 정도 전력으로 우승까지는 어렵다'고 내심 아쉬워한다.
성적이 나쁜 팀은 당연히 더 심하다. 서로 책임을 돌리거나 원망할 상대가 필요하다. 감독의 경기 운영이 답답한 단장은 자꾸 잔소리하고 싶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 감독은 수시로 현장 일에 왈가왈부하는 단장이 원망스럽다. 이런 감정의 충돌을 이겨내고 한 시즌을 무사히 마치는 것도 결국은 단장과 감독의 능력이자 임무다.
롯데의 진짜 문제는 이런 갈등 상황이 외부로 적나라하게 알려졌다는 거다. 야구는 단체 종목이다. '내분'의 이미지는 구단에 치명적이다. 많은 단장과 감독이 종종 티격태격하다가도 조용히 갈등을 봉합하거나 절충안을 찾는 이유다.
그러나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사태는 자존심 문제로 확대된다. 링 위에 공개적으로 올라온 이상, 어느 쪽도 질 수 없는 싸움이다. 성 단장과 허 감독이 각자 상대를 겨냥한 기 싸움을 하는 동안, 롯데 팬과 선수단도 양 갈래로 갈라져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도 성 단장은 야구팬이 수시로 드나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수차례 의미심장한 글과 사진을 남겨 일을 키웠다. 일례로 허 감독이 지난해 말 "단장님과 불화는 없다. 늘 감사드린다"고 대외적 봉합을 시도하자 성 단장은 SNS에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듣는 사진을 올렸다. 의도적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은 불화설에 관한 억측과 관심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됐다.
어쨌든 오랜 대립 끝에 허 감독이 먼저 링을 떠났다. 롯데는 일단 성 단장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 전쟁의 승자가 됐을까. 결과는 아직 모른다. 그보다 '집안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의미한 일이다.
프로야구에서 팬의 목소리는 중요한 권력이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팬심'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뀐다. 천하의 이대호도 경기를 마치고 나오다 '팬'이 던진 치킨 박스에 맞은 적이 있다. 향후 성 단장이 데려온 선수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지금 단장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팬들이 가장 먼저 돌아설 거다.
창단 40주년을 맞은 롯데 구단은 신생팀(SSG 랜더스) 구단주가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고 도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팀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팀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 감독과 덜컥 3년 계약을 하고, 다시 그 감독을 계약기간 절반도 안 돼 내보내는 것 외에는 해결책을 모른다.
지금 롯데는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고 있는 걸까. 성민규 단장을 앞세운 롯데 프런트는 이제 '총알받이'도 없는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