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희(29·두산)의 가치는 기록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는 마무리 투수보다 더 신뢰받는 셋업맨이다.
두산 셋업맨 홍건희는 지난주까지 출전한 28경기(32⅓이닝)에서 홀드 5개를 기록했다. 리그 21위 기록이다. 팀 내 1위 이승진(13개)보다 8개 적다.
홀드는 필승조의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다. 이 기록만 보면 홍건희는 평범한 불펜 투수다.
그러나 홍건희가 없는 두산의 불펜 운영은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다. 그는 두산 불펜 투수 중 최다 등판과 최다 이닝을 기록하며 '마당쇠' 역할을 하고 있다. 평균자책점(1.95)도 좋다.
최근 두산의 마무리 투수였던 김강률이 오른쪽 허벅지 부상 탓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셋업맨 이승진도 컨디션 난조 탓에 2군행으로 내려갔다. 이런 상황에서 홍건희가 두 투수의 몫까지 해내고 있다.
홍건희는 홀드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등판한다. 지난 9일 사직 롯데전이 그랬다. 두산은 7-8로 지고 있던 7회 초 공격에서 5득점 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비교적 넉넉한 점수 차(4점)로 앞서갔다. 그러나 김태형 두산 감독은 7회 말 바로 홍건희를 투입했다. 6회까지 8득점 하며 달아오른 롯데 타선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홍건희는 민병헌, 딕슨 마차도, 추재현을 모두 삼진 처리하며 롯데의 기세를 꺾었다. 포심 패스트볼 최고 스피드는 시속 154㎞까지 찍혔다. 이 경기에서 1⅔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두산은 8·9회 1점씩 추가했고 14-8로 승리하며 2연패를 끊었다. 홍건희는 홀드를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경기 승리를 이끈 수훈 선수로 평가받았다.
김태형 감독은 "현재 구위만 보면 홍건희가 마무리 투수를 맡아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불을 꺼주는 역할을 해줄 투수가 필요하다. 9일 롯데전에서도 (5득점 하며 역전한 뒤) 1점을 더 내주면 불안해질 수 있었다. 일단 막아줘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홍건희가 나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두산은 8회까지 1~3점 차 리드를 지킬 힘이 부족하다. 김태형 감독은 홍건희를 임무를 마무리 투수로 한정하기보다, '1실점'을 막기 위한 승부처에서 활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봤다.
홍건희는 5월 3~4주 차 두산이 치른 6경기 중 5경기에 등판, 4⅓이닝 동안 1실점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홀드는 1개도 챙기지 못했다. 지고 있거나 동점 상황에서 등판한 경기가 많았다. 앞서가거나 추격할 수 있을 때는 어김 없이 그가 나섰다.
홍건희는 두산이 유틸리티 내야수 류지혁을 KIA에 내주고 지난해 6월 영입한 투수다. 트레이드가 발표된 직후에는 두산이 손해를 봤다는 평가가 많았다. 홍건희는 데뷔 9년(2011~2019시즌) 동안 잠재력을 드러내지 못한 '노망주'로 여겨졌다.
두산의 선택은 재평가받고 있다. 홍건희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던 KIA 소속 시절과는 달리, 불펜 투수로 보직이 고정된 뒤 더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불펜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다. 팀 기여도는 투수진 중 단연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