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소의 '잡코인(비트코인 제외한 소규모 코인)' 솎아내기가 한창이다. 투자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몇 원대에 쓸어 담아뒀던 잡코인을 두고 버티던 투자자 최 모 씨는 "언젠가는 오르겠지 하고 잊고 살던 코인이었는데, 뉴스 보고 가상화폐 거래소에 들어갔더니 투자금액이 날아가고 없었다"고 말했다.
일주일 안에 최소 10개 코인이 또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자취를 감출 예정이다. 더는 거래소에 자리를 잡고 있을 자격이 없는 잡코인은 오는 9월 24일 거래소가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이하 특금법) 신고를 마치기 전까지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말 한마디에 들썩이던 코인 시장이 이번에는 잡코인 퇴출 '사건'들로 시끄럽다.
잡코인 퇴출…특금법 신고까지 쭉?
22일 가상화폐 거래소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는 지난 18일 코인 24종의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이 중 원화 마켓(시장)에 상장한 코인이 10개로, 이들 코인은 업비트에서 오는 28일 오후 12시에 거래 지원이 종료된다.
이에 따라 업비트 원화 마켓(원화로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에 남는 코인은 102개가 된다. 열흘 전(18일)과 비교하면 코인 13%가 사라진 것이다.
거래 지원 종료가 결정된 나머지 14개 코인은 비트코인 마켓(비트코인으로 다른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에 상장된 코인들이다. 총 161개가 상장된 비트코인(BTC) 마켓 코인 가운데 10% 가까이 증발하는 것이다.
또 다른 거래소인 빗썸은 지난 17일 애터니티(AE), 오로라(AOA), 드래곤베인(DVC), 디브이피(DVP) 등 코인 4개의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국내 3위 거래소인 코인빗 역시 지난 15일 코인 8종의 거래 지원 종료와 28종의 유의종목 지정을 알렸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각 거래소의 기준에 따라 코인이 상장됐다고 하더라도 유지가 되지 않으면 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거래소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다고 무조건 거래 중지로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 코인에는 소명 기간을 주고, 부족하면 이를 연장할 수도 있다"며 "이에 따라 판단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상장심의위원회가 한다"고 설명했다.
업비트는 내부 기준에 따라 유의 종목 지정 뒤 코인 발행 주체에 통상 일주일간의 소명 기간을, 빗썸은 공지한 날로부터 30일간의 유예 기간을 준다.
과거에도 이런 상장 폐지는 있었다. 업비트에서는 요즘 같은 '코인 투자 광풍'이 일기 전인 작년 10월 30일 코인 17개의 상장 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거래소는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결정한 일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거래소의 '잡코인 솎아내기'를 특금법 시행과 연결 짓는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오는 9월 24일까지 실명계좌 등 전제 조건을 갖춰 특금법 신고를 마치지 않으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실명계좌를 거래소에 제공하고 있는 은행들은 '가상자산 사업자(가상화폐 거래소) 자금세탁 위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에서는 '위험평가 방안'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은행은 현재 제휴 거래소의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여부, 금융관련법률 위반 여부, 고객별 거래내역 구분·관리 여부 등 법적 요건이나 부도·회생·영업정지 이력, 거래소 대표자·임직원의 횡령·사기 연루 이력, 외부 해킹 발생 이력 등 사업연속성 관련 기타요건을 문서나 실사 등의 방법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 평가 등으로 필수요건 점검이 마무리되면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정량 평가) 자금세탁 위험과 내부통제 적정성 등을 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소 입장에서는 제휴 은행의 이번 검증이 사실상 존폐 기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잡코인 투자자들 눈물·분노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상장 폐지 혹은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코인 종목들의 시세는 급격히 떨어지며 파란불이 켜졌다.
대형 거래소를 믿고 코인을 산 투자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처분하고 있다.
이에 분노한 투자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상화폐 거래소 상장 폐지 결정을 비판하는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한 청원인은 "거래소 측이 원화 마켓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상장 폐지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소마다 각각 기준을 두고 코인을 상장시킨다. 하지만 이 코인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위험성이 높아지면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거래소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학생이 의대에 입학한 것에 비유해보면 공부하고 적절한 성적을 받아야지 졸업을 하고 의사가 되는 것처럼 코인도 계속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교에서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의대에 남을 수 없는 것처럼, 기준에 충족하지 않은 가상화폐가 거래소에 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빗썸과 업비트에서는 유의 종목 지정에 대한 기준을 홈페이지에 고지하고 있다. 법령에 위반되거나 기술 취약성이 발견되는 경우, 사용자 불만이 지속해서 접수되거나 반응이 부정적인 경우 등으로 내용은 비슷하다.
하지만 금융당국에서 이를 규제하거나 보호하는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황이다.
거래소의 잡코인 솎아내기가 불규칙적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이자, 거래 자체를 꺼리는 소비자도 있다. 포털사이트 내 비트코인 커뮤니티만 봐도 불안한 투자자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투자자는 "잡코인이 언제까지 정리가 계속될지 불안해서 들어가지도 못하겠다"고 말했고, 또 다른 투자자도 "추가 유의 지정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 다른 잡코인을 줍는 것 자체가 도박이다"고 했다.
거래소가 잡코인을 빨리 정리하길 바라는 투자자 민심도 있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유의 종목 보유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빨리 잡코인이 상장 폐지됐으면 좋겠다"며 "유의 코인들로 거래대금이 몰려서 다른 코인들이 힘을 못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잡코인에 몰린 거래대금이 본인이 주운 코인에 유입돼 상승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