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이하 LG생건)이 럭셔리 브랜드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이하 후) 모델 이영애와 16년 연속 인연을 이어간다. K뷰티 업계는 모델 전환 속도가 빠르다. LG생건이 재계약으로 이영애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최장수 모델' 타이틀 뒤에는 '세대교체'라는 과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빅모델'이 드문 가운데 LG생건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후와 이영애…또 다른 역사
"빛나는 여정을 함께하게 돼 의미있고 기쁘게 생각한다."
이영애가 후 모델 재계약 발표가 있던 지난 14일 남긴 소감이다. 그의 말마따나 후와 이영애의 지난 시간은 '빛나는 여정' 그 자체였다.
LG생건은 2003년 최상위 브랜드 후를 론칭했다. 당시 국산 럭셔리 화장품은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의 '설화수'가 독식하고 있었다. 1997년 첫선을 보인 설화수는 비싼 가격에도 뛰어난 품질로 국산 명품 화장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LG생건은 설화수의 대항마로 후를 출시하면서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후는 출시 첫해 매출 103억원을 기록했다. 생활·뷰티 대기업의 명품 브랜드가 거둔 성적표라고 하기에는 초라했다.
후의 반전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2005년 1월 부임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이듬해 이영애를 모델로 기용했다. 이영애가 2003년 방영된 MBC 드라마 '대장금'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과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후는 이영애를 얼굴로 맞은 뒤 비약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2006년 549억원이던 매출이 4년 뒤인 2009년 1131억원으로 뛰었다. 2016년 단일 브랜드로 매출 1조원을 넘었고, 2018년에는 2조원을 달성했다. 사실상 LG생건을 견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LG생건의 2020년 매출은 7조8445억원이었다. 이 중 후의 매출은 33.3%인 2조6100억원에 달했다.
매출의 대부분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발생했다. 특히 중국 내 인기가 뜨거웠다. 대장금의 여주인공 이영애의 피부를 보고 반한 중국인들이 앞 다퉈 후를 사들였다. 2014년에는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후를 구매했다는 소식이 번지면서 이 제품을 사려는 중국 보따리상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후는 '왕후' '궁중문화'를 콘셉트로 한다. 각종 한방성분을 원료에 넣었다. 또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붉은색과 금색, 화려한 문양을 화장품 용기 디자인에 담았다. LG생건 측은 대장금에서 '어의녀'로 활약했던 이영애의 역할과 후의 럭셔리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대륙'과 아시아권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LG생건 측은 이번 재계약 발표와 함께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후의 성장 뒤에는 이영애가 있었다. 이영애는 후가 추구하는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이 시대의 왕후'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유일한 모델이다"고 말했다.
세대교체 고민은 계속
후는 앞으로도 이영애와 함께한다. 그동안 LG생건의 전례를 볼 때 계약 기간은 3년으로 예상된다.
대기록이다. K뷰티 업계에 16년이나 단일 브랜드를 지킨 모델은 없다. 송혜교는 2001년부터 아모레의 화장품 모델로 활약 중이다. 그러나 '에뛰드' '라네즈' '설화수' 등 아모레가 보유한 여러 브랜드를 단계적으로 올라가면서 계약을 맺었다. 김희애는 한국P&G의 럭셔리 브랜드 SK-II를 2004년부터 2017년까지 13년 동안 맡았다.
올해 만 50세가 된 이영애는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대장금이 끝없이 재방송되면서 아시아권에서도 여전히 유명세가 있다. 게다가 의욕적이다. 이영애는 오는 10월 JTBC에서 12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인 드라마 '구경이'의 주연으로 낙점됐다. 그동안 선보였던 캐릭터와 결이 다르다. 이번 드라마는 경찰 출신 보험조사관 구경이가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코믹 탐정물이다.
하지만 LG생건으로서는 후의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이영애의 뒤를 이어갈 차세대 주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대안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후는 수출이 매출의 대부분인 브랜드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스타는 한정돼 있다.
LG생건으로서는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인 '숨37도' 모델 전지현을 끌어올리는 방향이나 해외 모델,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발탁하는 쪽으로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후보에 오른 연예인의 미래 이미지와 평판 등을 고루 따져야 해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계약을 맺은 뒤 각종 루머나 사생활 이슈에 휘말려서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모델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LG생건도 이영애의 배턴을 이어받을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후 화보 촬영 때마다 다음 주자로 누굴 선택해야 할지, 모델을 더블 캐스팅해 이미지를 바꿔 나가야 할지 등 전략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