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오랜 ‘배터리 분쟁’으로 앙숙에 가까운 LG화학의 전철을 밟을 전망이다.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에 지급해야 하는 배터리 소송 배상금(2조원) 등의 재원 마련을 위한 SK이노베이션의 분사 전략은 ‘동학개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 성장성을 위해 투자 재원 확보가 절실한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분사라는 ‘LG화학의 길’을 선택했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은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등장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동학개미들은 배터리 사업 분사 소식에 휘청이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또다시 동요하고 있다.
지난 1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파이낸셜 스토리 ‘중장기 핵심 사업 비전 및 친환경 전략’ 발표에서 “배터리 사업 성장을 위해 상당히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데 재원 조달 방안의 하나로 분할을 검토하고 있다"며 "물적분할 방식이 될지, 인적분할이 될지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이날 첫 분사 가능성 소식에 주가는 8.8% 곤두박질쳤다. 2분기 매출 증가 등의 호재로 지속해서 상승했던 SK이노베이션 주식은 6월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네티즌들은 ‘개인주주에 등 돌리는 SK이노베이션’ ‘외국인 공매도에 갖다 바치는 SK이노베이션’ ‘화학·정유 아닌 배터리 보고 가치 투자했더니 멘붕’ 등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지난해 LG화학의 분사 추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당시 LG화학의 주가는 이틀 동안 11% 이상이 빠지며 크게 요동쳤다.
SK이노베이션도 LG화학처럼 배터리 사업에 대한 선제 투자 전략으로 분사를 택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성장성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7월 SK이노베이션의 사업 비중 중 배터리 부문은 12%에 머물렀다. 석유·화학의 비중이 65%로 가장 컸다. 하지만 올해 6월 시장 평가에서는 배터리 사업의 비중이 43%까지 증가했다. 42%를 점한 석유·화학의 비중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 올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 2분기 매출이 역대 최대인 7000억~8000억원이 전망되고 있다. 미국 1공장, 옌청 2공장, 헝가리 2공장이 가동되는 내년에는 영업이익이 흑자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7년부터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올해 3조원 중반대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에는 6조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했다.
이런 ‘장밋빛 기대’ 속에 고공행진 하던 주가는 ‘분사 전략’에 힘없이 주저앉은 셈이다. 김 총괄사장은 “배터리 사업 분할이 이뤄진다면 SK이노베이션은 순수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된다”고 말했다. 순수 지주회사 형태가 되면 아무래도 사업의 성장성이 주목받기 어려운 구조가 될 전망이다.
이와 반대로 분사하는 배터리 사업의 미래 가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동섭 배터리 부문 대표는 “배터리 생산시설 증설 속도가 빨라 전체적으로 많은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매년 2조∼3조원 수준의 투자가 집행되고 있다"며 "향후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배터리 사업 입장에서는 빨리 분사를 하면 좋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SK그룹은 일명 ‘쪼개기’를 가장 잘하는 그룹으로 꼽힌다. 이미 올해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상장하면서 기업 가치가 많이 증가했다. 분할 전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분리막을 담당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시장 가치는 2조~4조원 수준이었는데 상장 후 13조원으로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주주로서는 인적분할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이다. 인적분할은 물적분할과 달리 기존 주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인적분할의 경우 기존 주주가 신설 법인의 주식을 분할 비율만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최근 SK텔레콤의 지주사 전환이 인적분할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