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평생 자랑할 일입니다." 대선배 추신수(39·SSG 랜더스)와 승부를 이겨내고 팀의 승리까지 이끈 롯데 자이언츠 신인 김진욱(19)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롯데는 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경기에서 4-4로 팽팽히 맞섰다. 최형 감독 대행은 8회 말 무사 1, 2루에 몰리자 왼손 투수 김진욱을 등판시켰다. 최지훈-최주환-추신수로 이어지는 왼손타자들과 승부를 위해서였다.
최지훈은 희생번트를 댔지만 롯데의 전진 수비에 막혔다. 3루수 한동희가 빠르게 공을 잡아 3루로 뿌려 선행주자를 잡았다. 하지만 최주환에게 볼넷을 줘 1사 만루.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김진욱은 추신수와 맞섰다. 경기 뒤 김진욱은 "중요한 순간에 추신수 선배와 만났다. (타자가 추신수라는 걸)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김진욱은 직구 2개를 꽂아 2스트라이크를 만들었다. 직구에 강한 추신수도 노렸지만 정확하게 맞지 않았다. 볼 2개를 내준 김진욱은 5구째 다시 패스트볼을 선택했고, 추신수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김진욱은 "포수 지시완 선배가 직구 타이밍에 타자 스윙이 조금 늦는 것 같아 직구 사인을 냈다. 만루이기 때문에 3볼-2스트라이크에 몰리지 않으려고 빠른 승부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호 선배님이 최근에 직구가 강점이니까 후회 없도록 직구로 주로 승부하라는 조언을 해줬다"고도 했다.
김진욱은 다음 타자 최정은 삼구삼진으로 잡아 위기를 벗어났고, 롯데는 9회 초 안치홍의 희생플라이와 김재유의 적시타로 두 점을 뽑아 2연승을 이어갔다. 김진욱은 시즌 2승째를 수확했다.
김진욱은 "더그아웃에 돌아오자 최현 감독 대행님이 '네가 해냈다(You done)이라고 칭찬했다. 이용훈 투수코치님이 저 때문에 마음 고생 많이 하셨는데(편하게 해준 것 같다"고 웃었다. 최현 대행은 "김진욱이 놀라운 투구를 했다. 상대 중심 타선을 상대로 잘할거라 예상했다. 강인한 멘털로 맞섰다.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승리도 승리지만 김진욱에게 더 기쁜 건 대선배 추신수와 정면대결을 펼쳐 이긴 것이었다. 추신수와 김진욱은 스무 살 차다. 김진욱이 태어나기도 전에 추신수는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김진욱이 야구공을 잡았을 때 이미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다.
추신수가 올해 국내 복귀를 선언한 뒤 '대결해 보고 싶은 상대'로 꼽는 투수는 많았다. 특히 김진욱처럼 젊은 투수들이 그렇다. LG 이민호, 삼성 원태인 등은 "추신수 선배를 상대로 삼진을 잡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추신수도 "어린 선수들이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후배들의 도전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김진욱은 "친구들에게 평생 자랑할 일이 생겼다. 기분 좋다. 오현택 선배는 나를 안아줬다"고 웃었다.
김진욱은 입단과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2차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면서 이의리(KIA 타이거즈), 장재영(키움 히어로즈)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꼽혔다.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발 보직도 부여받았다. 하지만 선발로 나선 4경기에서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10.90을 기록했다.
결국 구원투수로 보직을 바꾼 김진욱은 조금씩 1군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롯데는 김진욱이 조금씩 타자를 상대하면서 성장시키로 했고, 구원투수로 나온 11경기에선 8번 무실점하며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진욱은 "선발투수는 투구수도 생각해야 하는데, 불펜에선 공 1개에 집중할 수 있다. 볼넷이 많고, 왼손투수인데 우타자보다 좌타자 피안타율이 높았던 것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지난 실패를 돌이켰다. 이어 "구원투수로 나와 자신감이 붙으면서 구속도 늘어났다. 한 타자, 한 타자 막다 보니 더 힘을 쓰게 되서 그런 듯하다"고 했다.
신인왕 레이스에선 다소 뒤처졌지만, 김진욱의 프로 경력은 이제 시작이다. 그는 "의리나 (이)승현(삼성 라이온즈)이가 잘 던져주고 있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된다"며 동기생들에게 뒤지지 않는 활약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