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은 1일 도쿄올림픽 도미니카공화국전(4-3 끝내기 승리)을 앞두고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중반까지 선수 전체가 긴장을 많이 하고 경직된 것처럼 보였다.
선발 이의리는 1회 초 초반 스트라이크를 못 넣어서 걱정했다. 아무래도 큰 경기 경험이 없다보니 표정이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첫 점수를 주고 나서 오히려 정신이 확 든 느낌이었다. 그전에는 릴리스포인트가 안 잡혔는데, 실점 후 깔끔하게 잘 막았다. 그때 2~3점을 더 주면서 무너지지 않고 1실점으로 끝내서 투수들이 9회까지 3점으로 막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이의리는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신인이고, 중요한 경기여서 부담도 컸을 텐데 무척 잘해냈다. 앞으로 경험을 더 쌓으면 더 좋은 투수가 될 것 같다.
1회말 강백호의 첫 타석 2루타도 인상적이었다. 강백호가 현재 KBO리그 타율 1위 타자라 해도,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대표 4번을 맡게 되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의욕이 너무 큰 느낌이었다. 조별리그 두 경기에선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국가대항전은 생소한 투수들을 상대해야 해서 간결하고 짧은 스윙으로 먼저 맞히다가 감이 잡히면 풀스윙으로 자기 타격을 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백호는 이전까지 스윙이 너무 컸다. 물론 풀스윙을 해도 되지만, (원래 자신의 패턴보다) 오버 스윙을 한 게 문제다. KBO리그에서 백호는 제구 잘 된 공은 콘택트 해서 안타로 만들어내고, 실투는 큰 스윙으로 장타로 연결하는 타자였다. 이번 올림픽에선 풀스윙만 하니까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간 다음에 스윙하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김경문 감독님이 도미니카공화국전부터 백호를 2번으로 전진배치하면서 부담을 덜었던 것 같다.
다만 1회말 무사 만루에서 2~3점은 뽑았어야 했는데, 1득점으로 끝나서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특히 김현수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이겨야 되고, 지금 점수를 내야 하는데. 국내였다면 여유 있게 발도 (타석에서) 한번 빼보면서 정비를 할 텐데, 1일 경기에선 상대 선발 템포가 빠르니까 자신 없어 보이는 스윙으로 삼진을 당했다.
현수는 대표팀 타자들이 다 믿고 의지하는 존재다. 주장이고, 이전에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계속 내줬다. 현수 타석을 보면서 다음에 준비하는 타자가 상대 투수의 공을 판단하고 준비하는데, 자신 없는 스윙을 하니 '현수 형도 저렇게 어려워하는데 나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전체적으로 타자들의 부담이 커보였다. 스윙이 경직돼 있고, 가벼운 느낌이 안 들더라. 미국전(지난달 31일)에 진 뒤로 부담이 큰 거다. 특히 도미니카 4번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뒤로는 다들 풀스윙만 하고 있더라. 그럴 땐 배트를 짧게 쥐고 스윙을 간결하게 하거나 볼넷으로라도 나가려는 느낌을 줘야 하는데, 안 좋을 때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잘 안 보여서 무기력해 보였다.
한국 대표팀이 한창 잘할 때는 선발에 류현진 김광현, 불펜에 정현욱, 임창용 등처럼 중심을 잡는 투수가 있었다. 이번 대표팀에는 그들처럼 '이 선수가 나가면 막는다'는 생각이 드는 투수가 없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계산이 안 서는 투수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경문 감독님이 첫 경기부터 투수 운용을 잘해서 점수를 많이 주지 않고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투수들이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는데, 확실한 카드가 없는 약점을 적절한 타이밍의 투수 운용으로 보완한 덕이다. 마지막에 대표팀에 발탁된 오승환의 존재감도 눈에 띄었다. 9회초 2사 3루 상황에서 실점을 안 하고 막은 순간, 경기 흐름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고 본다. '역시 오승환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9회말 대타 최주환이 안타로 출루하고 김혜성이 대주자로 나가서 도루하는 모습을 보니 김경문 감독님이 대표팀 엔트리를 어떤 생각으로 구성했는지 잘 알겠더라. 단독 도루를 할 수 있는 김혜성이 2루까지 가주면서 병살 위기가 사라지고 투수의 부담감이 커졌다. 거기서 박해민의 적시타가 나왔고, 이정후가 동점 적시 2루타를 쳤다. 이정후는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안정된 느낌을 주는 선수다. 잘 치고 있을 때나 아닐 때나 믿음이 간다.
그리고 결국 김현수가 해결했다. 초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부담이 컸을 텐데, 앞선 타석에서 시프트를 뚫고 왼쪽으로 안타를 만들면서 감을 찾고 자신있게 친 것 같다. 현수는 국제대회 베테랑이라 컨디션이 안 좋아도 경기를 하면서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결국 끝내기 안타를 쳐서 팀의 중심을 잡았다.
다 진 것 같았던 힘든 경기를 잡았다. 젊은 선수가 많은 대표팀 분위기가 한결 좋아지고 응집력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긴장을 풀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