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내수와 수출 모두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가운데 여름휴가 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타결마저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수백만 원대의 할인 판촉에 나섰지만,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올 하반기 경영정상화는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내수·수출 동반 부진
4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달 내수 4886대, 수출 1만4329대를 포함 총 1만9215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44.5% 감소한 수치다.
국내는 소형차 인기가 줄어드는 동시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30.1%나 판매가 쪼그라들었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가 총 1991대 판매돼 내수 판매 1위를 차지했지만, 전년 동월 대비 20.2% 감소했다.
효자 품목이었던 스파크는 국내에서 1571대가 판매됐지만, 지난해보다 29.3% 줄었다. 같은 기간 말리부는 277대로 39.4%, 부분변경 모델 출시를 앞둔 볼트 EV는 69대로 4.2% 감소했다.
수출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보다 48.2%가 줄었다.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가 형제 차종인 뷰익 앙코르 GX와 함께 1만1484대가 수출되며 한국GM의 수출 실적 전반을 이끌었지만 마이너스 성장을 막지 못했다.
한국GM은 내수 실적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쉐보레 브랜드의 트래버스, 트레일블레이저, 스파크, 말리부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36개월 무이자 할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또 저리 할부와 현금 지원이 결합한 콤보 할부 선택 시 트래버스 250만원, 말리부 180만원, 트레일블레이저 80만원, 스파크 60만원의 현금을 지원한다. 이달 구매 혜택 적용 시 차종 별 최대 가능 혜택 금액은 트래버스 430만원, 말리부 250만원, 트레일블레이저 110만원, 스파크 80만원이다.
임금협상 타결 '불발'
한국GM이 급한 대로 할인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내수 실적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여름휴가 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마무리 짓지 못해 생산 차질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국GM 노조가 조합원 6727명을 대상으로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과반수인 3441명(51.15%)이 반대표를 던졌다. 잠정합의안은 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
잠정합의안 가결이 무산되면서 노사는 재협상을 통해 다시 잠정합의안을 마련하고 전체 노조원 대상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여름휴가를 맞아 이달 초 국내 자동차 공장이 일제히 가동을 중단하는 만큼 본격적인 재협상은 이달 중순 이후가 될 전망이다.
앞서 한국GM 노사는 기본급을 3만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하고, 450만원의 일시·격려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부평 2공장 생산 일정을 최대한 연장하고 창원공장의 스파크 생산 연장 가능성을 검토하는 내용도 합의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노조가 기존에 요구했던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성과급·격려금 1000만원 이상 인상에는 못 미치면서 조합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부평 1·2공장과 창원공장의 미래 생산 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부평 2공장은 생산일정이 내년 7월까지만 예정돼 있어 조합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서도 수차례 파업을 벌이며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으나 45%의 찬성밖에 얻지 못해 부결된 바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이번 부결로 노조가 바로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 부족에 노조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생산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반도체 부족으로 지난 2월 부평 2공장의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였고, 지난 4월에는 부평 1공장과 2공장의 생산을 일주일간 전면 중단했다. 현재도 창원공장과 부평 2공장은 절반만 가동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 7월부터 해소될 것으로 예측됐던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가 하반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임단협을 두고 한국GM 노조가 또다시 파업 카드를 꺼낸다면 생산 문제는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3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
한국GM 노사의 이런 행보는 국내 완성차 업계 1위 현대자동차와 비교된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28일 전체 조합원(4만8천534명)을 대상으로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한 결과, 4만2745명(투표율 88.07%) 참여, 2만4091명(56.36%) 찬성으로 가결했다.
잠정합의안은 기본급 7만5000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200%+350만원, 품질향상 및 재해예방 격려금 230만원, 미래경쟁력 확보 특별합의 주식 5주, 주간 연속 2교대 20만 포인트(20만원 상당),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래시장 상품권 10만원 지급 등을 담고 있다.
이번 가결로 현대차 노사는 3년 연속 파업 없이 임단협을 타결하게 됐다.
현대차 노사는 2019년에는 한일 무역분쟁 여파,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파업 없이 교섭을 마무리했다. 올해 역시 코로나19 여파가 지속하고 반도체 수급 문제로 휴업 사태를 빚는 등 위기가 여전하다는 점에 노사가 공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GM 본사인 GM은 국내 생산 물량 배정을 주저하고 있다.
현재 한국GM은 국내에서 중형 세단 말리부, 소형 SUV 트랙스·트레일블레이저, 경차 스파크만을 생산 중이다. 하지만 일부 모델들은 이미 생산 중단이 확실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단종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트랙스와 말리부의 부평공장 생산 일정은 2022년 7월까지로 정해져 있다. 또 창원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경차 스파크는 내년 하반기 중으로 생산이 중단돼 단종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한국GM은 트레일블레이저와 2023년 배정 예정이 크로스오버차량(CUV)만 생산하게 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은 지난해 1월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이후 국내에서 생산하는 신차 배정이 끊겼다. 수입차만 들려와 판매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에서 수입 판매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