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는 ‘컬링 천재’에요. 믹스더블을 처음 하는데도 너무 잘해요. 전 ‘머슴’입니다. 돌쇠처럼 열심히 쓸고 닦아야죠. 짐도 나르고.”
지난달 30일 강릉컬링센터에서 만난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이기정(26)이 김민지(22)를 칭찬하자, 김민지는 “아니에요~ 오빠도 참~”이라며 부끄러워했다. 김민지-이기정은 지난 9일 끝난 2021~2022 컬링 믹스더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9전 전승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민지는 춘천시청 여자컬링(4인조) ‘팀 민지’의 스킵(주장)이다. 2019년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 동메달을 이끌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 믹스더블에 출전했던 이기정은 남자컬링(4인조)으로 전향, 현재 강원도청 남자팀에서 뛰고 있다.
둘은 7월 여자컬링, 남자컬링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둘은 지난달 중순 강원컬링연맹 믹스더블에서 한 팀으로 뭉쳤다. 이기정은 “민지와 함께라면 모든 선수를 이길 것 같았다. 얼마 전 (입영) 영장이 나왔는데, 대표 선발전에 떨어지면 입대하려 했다”고 했다. 김민지도 “기정 오빠는 올림픽 경험이 있어 의지가 많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춘천시청에서 김민지를 지도하다가 믹스더블 대표팀을 맡게 된 이승준 코치는 “둘이 좋은 조합을 이룬다. (김)민지는 샷 감각이 좋은 스킵이고, 이기정은 샷은 물론 스위핑 능력도 갖춘 서드”라고 설명했다. 몇 번만 손발을 맞춰본 둘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9연승을 달리며 ‘최강 콤비’로 거듭났다.
이기정은 “민지는 다 이겨버리는 능력자다. 워낙 잘해서 지금처럼만 하면 좋겠다”고 하자, 김민지는 “오빠가 내 몫까지 더 열심히 스위핑 해준다. 드로우 할 때 부담 없이 던질 수 있게 라인 파악을 잘해준다”고 화답했다. 이기정은 “우리 팀은 전략적이다. 승부를 봐야 할 때 승부를 본다”고 하자, 김민지도 “스틸(선공팀이 득점) 하자고 하면 스틸을 한다”고 했다.
믹스더블을 처음 해본 김민지는 “제가 믹스 더블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옆에서 춘천시청 동료들의 웃음이 들리지 않아 허전하기도 하다”면서도 “믹스더블은 둘이서 하니 실수 하나만 나와도 경기가 확 바뀐다”고 했다. 이기정은 “춘천시청에서는 ‘하스킵(하승연 스킵)’이 잘해주고 있다. 민지는 돌아갈 자리가 없다. 나랑 잘해야 한다”며 웃었다.
활발한 이기정이 낯가리는 김민지를 잘 이끈다. 이기정은 “빙판에서 민지를 ‘저기요~’라고 부른다. 민지한테 혼날까 봐”라고 장난쳤다. 그는 또 “민지를 비롯한 춘천시청 선수들 소고기를 사준 적이 있는데 (음식값이) 많이 나왔다. 선수는 선수더라”고 하자, 김민지는 “에헴~”이라고 받아쳤다.
둘은 올해 12월 퀄리피케이션(올림픽 자격대회)에서 10여개 팀 중 2위 안에 들어야 2022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둘은 지난달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한 안산·김제덕을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컬링도 양궁과 비슷하게 스톤을 하우스로 던진다. 김제덕이 “빠이팅~”을 외쳤듯, 이기정도 득점을 따면 포효한다. 김민지는 “오빠가 ‘좋아’를 외치면 저도 웃게 되고 긴장이 풀려서 좋다”고 했다. 이기정은 “어린 선수(김제덕)가 떨지 않고 해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퀄리피케이션에서 미국, 러시아, 일본 등과 경쟁한다. 죽을 힘을 다해 꼭 올림픽에 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