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황희찬은 지난 7일 수원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차전 레바논전 1-0 승리를 이끌었다. 후반 15분 홍철(울산)이 침투 패스를 찔러주자 왼쪽 측면을 파고든 황희찬이 달려가며 그대로 왼발 땅볼 크로스를 올렸다. 이는 문전으로 쇄도한 권창훈(수원)의 결승 골로 연결됐다.
이날 종아리 부상으로 결장한 손흥민(토트넘) 대신 황희찬이 왼쪽 윙어로 출전했다. ‘황소’라는 별명처럼 저돌적인 돌파를 선보였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음메페’. 폭발적인 가속력을 자랑하는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와 황소 울음 ‘음메’를 합한 말이다.
황희찬은 레바논전 초반에 다소 투박했다. 하지만 점차 그의 플레이가 풀리기 시작했다. 전반 16분 강력한 왼발 논스톱 슛은 골키퍼 손끝에 걸렸다. 그리고 후반에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올렸다.
황희찬은 분위기를 한 번 타면 ‘성난 황소’로 변신한다. 2018~19시즌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시절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랬다. 빅클럽 리버풀(잉글랜드), 나폴리(이탈리아)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황희찬의 ‘성난 질주’ 비결 중 하나는 유럽 집에 있는 특수 장비다. 영하 180도 액화 질소를 이용해 3~5분간 체온을 떨어뜨려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다.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자 황희찬이 1억 원 가까운 장비를 구입했다. 라이프치히(독일) 주전 경쟁에서 밀린 황희찬은 지난달 30일 울버햄튼으로 1년간 임대됐다. 당분간은 영국 호텔에서 지낼 예정이다. 집을 구하면 특수 장비를 어떻게 옮길지 고민 중이다.
8일 출국한 황희찬은 이르면 11일 오후 11시 왓포드와 원정 4라운드에서 EPL 데뷔전을 치를 전망이다. 앞서 황희찬은 지난달 30일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드와 홈경기에 앞서 깜짝 입단식을 했다. 울버햄튼의 노란 유니폼을 입은 황희찬이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홈팬들이 기립박수로 환대했다. TV 중계 카메라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황희찬을 비췄다.
그만큼 황희찬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울버햄튼은 올 시즌 3전 전패로 18위에 그치고 있다. 3경기에서 슈팅을 57개나 때리고도 아직 무득점이다. 토트넘전에 슈팅 수에서 25-8로 앞섰지만, 0-1로 졌다.
울버햄튼의 브루누 라즈(45·스페인) 감독은 “황희찬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 팀에 역동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전방 공격수 라울 히네메스(30·멕시코) 뒤를 받치는 역할로 기용할 뜻을 시사했다. 울버햄튼에서 스리톱을 가동하는 라즈 감독은 벤피카(포르투갈) 사령탑 시절에는 투톱 전략을 즐겨 썼다. 수년 전부터 황희찬을 주시한 울버햄튼은 완전 이적시 이적료 1300만 파운드(208억원)를 지불한다.
황희찬은 레바논전에 측면 공격수로 나섰다. 파울루 벤투 한국 감독은 그리 크지 않은 황희찬(키 1m77㎝)을 주로 측면에 배치하고 있다. 사실 황희찬은 중앙 공격수를 선호한다. 포항제철중·고 시절부터 중앙 공격수로 나선 ‘스코어러’였다. 그렇다고 대표팀에서 슛을 난사하진 않는다. 자기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하다 보니, 권창훈의 득점도 도울 수 있었다.
황희찬은 울버햄튼 구단에 중앙 공격수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버햄튼에는 ‘스페인 황소’라 불리는 아다마 트라오레(25)가 있다. 보디빌더 같은 근육을 지닌 트라오레는 사이드 돌파가 좋다. ‘두 마리 황소’의 콤비 플레이도 기대된다.
장지현 해설위원은 “울버햄튼 최전방 공격수는 히메네스 외에 파비우 실바(19) 정도이며 득점이 많지 않다. 팀에 좋은 윙어들이 많은데, 감독이 황희찬을 중앙 공격수·세컨 스트라이커·윙어 등 여러 역할을 부여하며 경쟁력을 볼지, 바로 중용할지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황희찬은 23일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과 카라바오컵(리그컵) 3라운드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