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치며 팀의 8-0 승리에 공헌했다. 팀 승리뿐 아니라 개인으로도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KBO리그 역대 54번째이자 최고령 20-20(만 39세 2개월 22일) 기록이다.
진기록을 남긴 날이었지만, 이날 추신수는 리그를 대표하는 베테랑답게 개인 기록에 대한 만족감보다 리그를 향한 직언을 꺼내는 데 집중했다. 특히 KBO리그의 부족한 인프라에 대해 작심하고 비판했다. 추신수는 5일 경기 후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야구 했으면 좋겠다.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이 있다”면서 “메이저리그(MLB)처럼 말도 안 되게 좋은 시설은 아니더라도 KBO리그도 한국에선 메이저리그가 아닌가. 그에 맞는 시설은 갖춰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되어있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경기 준비를 위한 시설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추신수는 “웨이트 훈련을 호텔 헬스장에서 일반인들과 섞여서 해야 한다”며 선수들이 집중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전했다. 이어 “(강속구를 던지는) 고우석을 상대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타자는 좁은 곳에서 스윙만 하다가 대타로 나가 공을 쳐야 한다”면서 “기계로 공을 쳐도 칠까 말까 하는데, 그런 준비도 전혀 없이 나간다”고 타격 훈련을 위한 실내 배팅 케이지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도 짚었다.
MLB 구장에서는 보통 실내 배팅 케이지를 설치해 선수들이 경기 중에도 타격 훈련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 낙후된 시설로 유명했던 LA다저스의 다저스타디움도 지난 2013년 구장 리모델링 때 원정팀을 위한 배팅 케이지를 설치했을 정도다. 이제 MLB에선 경기 중 영상 분석과 배팅 훈련으로 타격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하는 풍경이 익숙해졌다.
추신수는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성적을 바라는 건 과욕이라고 주장했다. 추신수는 “그런 환경도 없이 준비하는데 국제대회 부진이 선수들만의 잘못일까”라며 “프로야구에서 배팅 케이지조차 없이 야구를 하는 것이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다 책임이 있다.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들어주지 않는 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추신수는 이어 “재능 있는 선수들이 너무 많지만 이러면서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길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이다”라며 인프라가 갖춰져야 국제대회 성적도 따라 개선될 것이라 전망했다.
추신수가 KBO리그 인프라를 비판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추신수는 시범경기를 위해 잠실구장을 처음 방문한 지난 3월 30일에도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고 있다.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면 더 나은 선수가 될 수도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원정 라커룸 시설도 안 좋고 실내 배팅 케이지가 없어 30개 배팅만 치고 경기에 임한다. 치료 공간도 부족하다”라면서 “한 경기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몇 명의 선수가 그렇게 준비할 수 있을까 싶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그렇게 쉽지 않다. 준비를 다 해놓고도 안될 수 있는 게 야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과도 있었다. 악명 높던 잠실 원정 라커룸이 올 시즌 후 새로 단장할 예정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이슈화된 데 이어 정식 절차를 밟게 됐다. 추신수의 발언 후 KBO가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보낸 개선 요청안이 실제 보수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슈가 되자 오세훈 서울시장(당시 서울시장 후보)은 “최신 시설은 물론, 트렌드 변화에 대비하는 방향까지 함께 검토하겠다”며 시설 개선을 약속했다. 이어 지난 7월 6일에는 서울시가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를 통해 잠실구장 시설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 시즌 후 라커룸을 비롯한 시설 개선이 유력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잠실 원정 라커룸 개선이 예정되어있을 뿐 추신수가 여러 차례 강조한 실내 배팅 케이지를 비롯한 다른 준비 시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나오고 있지 않다. 추신수가 다시 한번 쓴소리를 꺼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