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23·성남시청)이 심석희(24·서울시청)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자신과 고의로 충돌했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최민정의 소속사 올댓스포츠는 12일 “(심석희와 충돌로) 유력했던 금메달을 놓쳤다. 무릎 인대를 다쳐 보호대를 착용했다. 절뚝거리며 걸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심석희와 코치가 고의로 넘어뜨렸다면 승부조작을 넘어 위해를 가한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최민정 측은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진상 파악과 향후 대처방안을 요구하는 공문을 지난 11일 보냈다.
이는 심석희와 대표팀 모 코치가 평창올림픽 때 나눈 문자 메시지를 연예 매체 디스패치가 지난 8일 공개한 데 따른 것이다. 대화에는 여자 1000m 경기를 앞두고 심석희와 코치가 “브래드버리 만들자”라는 내용이 있다. 스티븐 브래드버리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경기에서 5명 중 5위로 달리다가 앞선 선수들이 연쇄 충돌로 넘어지면서 우승했다. 둘의 메시지에 따르면, 심석희가 최민정이 아닌 브래드버리처럼 어부지리로 우승하는 선수를 만들자고 코치와 모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대화를 나눈 직후인 2018년 2월 22일 경기에서 심석희는 국가대표 동료 최민정과 부딪혔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4위였던 심석희는 3위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를 제치려고 파고들었다. 그때 5위였던 최민정도 아웃코스로 추월하기 위해 심석희 옆으로 따라붙었다. 이때 충돌하면서 둘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달린 심석희가 4위, 최민정이 5위로 들어왔다. 비디오 판독 결과 심석희가 실격되면서 최민정이 4위가 됐다. 최민정 측은 “심석희와 모 코치가 (1000m 경기 후) 서로 칭찬하고 기뻐하는 대화 내용은 의도적으로 최민정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심석희에게 임페딩(impeding) 반칙을 줬다. 이는 상대 선수를 고의로 막거나 미는 행위로, 몸싸움이 잦은 쇼트트랙에서 가장 판정하기 어려운 반칙이다. 당시 나탈리 램버트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장은 “규정에 따르면 실격이 됐을 땐 반칙 종류만 설명하게 되어 있다. 어떤 상황인지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심판들이 돌려본 장면이 무엇인지를 코치박스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코치는 누가 어떤 반칙을 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의문이 생기면 심판에게 설명을 요구할 수 있다. 당시 대표팀 코치진은 심석희가 폰타나를 밀어 실격된 것으로 이해했을 뿐 심판에게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았다.
심석희는 11일 입장문을 내고 “일부러 넘어지거나 다른 선수를 넘어뜨려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저와 최민정 선수 모두 아웃코스로 추월해 스퍼트하는 특기가 있다. 그 과정에서 충돌해 넘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으로 심석희가 최민정과 충돌할 때 ‘고의성’ 여부가 중요해졌다. 중앙일보는 평창올림픽 대표팀 관계자 A와 현장에서 생중계한 해설위원 B와 C에게 경기 영상을 다시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A는 “심석희가 일부러 최민정을 밀었다고 보긴 힘들다. 손으로 밀었다면 영상에 찍혔을 텐데 그런 부분은 없다. 스케이트로 밀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걸 판단할 영상은 없다. 최민정이 나오는 바깥쪽으로 심석희가 스케이트 날을 밀기도 쉽지 않다. 상대는 물론 본인도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B는 “심석희가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폰타나 앞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충돌했다. 심석희가 먼저 중심을 잃으면서 추월하려던 최민정도 휩쓸려 넘어졌다. 추월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이었다. 둘의 충돌을 놓고 고의성을 판단하긴 불가능하다”고 했다.
C는 “워낙 예민한 사안이다. (고의 충돌 및 방해 여부는) 당사자들만 알 수 있지 않을까. 가운데 위치한 심판들이 정확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심석희의 고의 충돌 의혹은 국정감사장에도 등장했다.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 등 4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심석희 논란을 공식 질의했다. 이기흥 회장은 “고의성을 가지고 선수들이 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내용을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