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클린베이스볼센터는 지난 13일 "퓨처스(2군)리그에서 '타격왕 밀어주기'를 위해 고의로 느슨한 수비를 펼친 팀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국군체육부대(상무) 야구단 소속 내야수 서호철(25)이 지난 8~9일 문경 2군 경기에서 상대 팀인 KIA의 도움을 받아 남부리그 타격왕에 올랐다는 것이다. 서호철은 이 2경기에서 연속 멀티 히트로 타율 0.388을 기록하면서 롯데 김주현(0.386)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타격 1위를 확정했다.
제보자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서호철이 친 안타 4개 중 2개가 번트안타였다"는 점이다. 서호철은 8일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기습 번트를 대 투수 앞 내야안타로 연결했고, 9일에도 1회 첫 타석에서 3루수 쪽 번트안타로 출루했다.
제보자는 "서호철은 올 시즌 번트안타가 하나도 없었고, 오른손 타자라 번트를 내야안타로 만들기도 어려운 선수다. 상무 측에서 서호철을 타격왕으로 올리기 위해 KIA에 부탁했다는 정황이 있다. 실제로 KIA 내야진이 서호철의 번트 타구를 적극적으로 수비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고의로 안타를 만들어줬다"고 주장했다.
클린베이스볼센터는 즉각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정금조 클린베이스볼센터장은 "관련 팀들로부터 경위서를 받았고, 해당 경기 때 현장에 있던 KBO 경기운영위원과 기록위원, 심판, KIA와 상무 2군 감독, 선수,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최대한 자세히 상황을 파악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KIA와 상무는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특정 선수를 타격왕으로 밀어줘야 할 이유가 없다"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KIA는 "번트안타가 없던 선수라서 번트 수비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고, 상무는 "서호철은 번트안타 외에도 2루타 포함 2안타를 더 쳐서 타격왕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보자가 '밀어주기'의 이유로 내세웠던 '상무의 갑질'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상무는 2019년 경찰야구단 해체 후 현역 선수가 야구를 하면서 군복무할 수 있는 유일한 팀으로 남았다. 구단들 입장에선 입대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더 상무에 보내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상무 감독에게는 선수 선발 권한이 없다. 2018년부터 야구단도 다른 종목처럼 국방부 인력이 포함된 선수 선발위원회가 1차 서류전형과 2차 체력·신체·인성 검사를 거쳐 최종 명단을 추린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이름값 높은 선수가 지원해 감독이 데려오고 싶다고 해도, 체력 테스트에서 탈락하면 못 간다. 예전엔 각 구단 사정을 살피느라 팀별 선수 안배를 했는데, 요즘은 그런 문화도 사라졌다"고 했다. KIA 입장에선 굳이 무리해가며 상무에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서호철은 KIA가 아닌 NC 소속이다. 그 경기를 끝으로 전역해 NC에 복귀했다.
오히려 남부리그 타격왕 경쟁을 하던 김주현이 해당 2연전에 앞서 KIA 2군 포수에게 "볼넷도 좋고 사구도 좋으니 서호철에게 안타는 맞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게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롯데 관계자는 19일 "선수가 '그런 내용을 보낸 게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강요'나 '청탁'의 느낌은 아니었다고 한다"며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내용인 것은 인정한다. 구단 내부적으로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명예에 큰 타격을 입을 뻔했던 KIA와 머쓱해진 롯데. 갑작스러운 2군 '타격왕 밀어주기' 논란의 쟁점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KBO 관계자는 "아직은 크게 의심스러운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