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던진 공은 물리적으로 떠오를 수 없다. 포수를 향해 날아가는 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포물선을 그린다. 하지만 타자는 일반적인 궤적보다 '덜 떨어지는' 공을 떠오르는 것처럼 느낀다. 흔히 말하는 '라이징 패스트볼(rising fastball)'은 실제 공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타자가 느끼는 착각의 결과다. 투구의 수직 무브먼트(vertical movement)가 클수록 '라이징 패스트볼'에 가깝다.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22)은 수직 무브먼트 값이 큰 투수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올 시즌 안우진의 직구 수직 무브먼트는 30.4㎝로 KBO리그 상위 8위(750구 이상 기준·리그 평균 26.4㎝)였다.
투구가 회전하지 않고, 중력의 영향만 받아 떨어지는 지점을 0으로 정하면 안우진의 직구는 이보다 30.4㎝ 높다. 그만큼 타자는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낀다. 국내 오른손 투수 중에선 배제성(KT 위즈·33.4㎝)·김민우(한화 이글스·31.6㎝)·이태양(SSG 랜더스·31.2㎝)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런데 안우진은 앞선 세 선수와 차별화된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구속이다.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50.9㎞로 리그 선발 투수 중 가장 빠르다.
키움 전력분석 관계자는 "안우진은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수직 무브먼트가 좋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 높은 곳에 형성되는 하이 패스트볼 효과가 뛰어나다. 공의 회전수도 많아서 (홈플레이트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구속까지 빠르니 타자가 공략하기 더 어렵다"고 말했다. 자주 상대하지 않았던 타자들은 생소함까지 더해진다.
지난 1일 열린 두산과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에선 안우진의 위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안우진은 7회 1사까지 삼진 9개를 뽑아냈다. 5회 2사까지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고, 6과 3분의 1이닝 동안 4피안타 2실점 쾌투로 7-4 승리에 힘을 보탰다.
패하면 시리즈 탈락하는 중압감이 큰 무대. 그는 한 가지 확실한 게임 플랜을 세운 듯했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선 무조건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직구를 꽂았다. 이 높이로 빠른 공을 던지면 타자의 눈높이와 비슷해져 배트가 나오기 쉽다. '라이징 패스트볼'처럼 보이는 안우진의 결정구에 두산 타자들은 계속 착각했다.
이날 안우진의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7㎞까지 찍혔다. 탈삼진 9개 중 삼진 5개의 결정구가 직구였고, 모두 헛스윙이었다. 김재환·박건우·양석환 등 내로라하는 두산 간판타자들의 배트가 맥없이 돌아갔다. 직구로 밑그림을 잘 그리니 변화구인 슬라이더(탈삼진 3개)와 커브(탈삼진 1개)도 더 위력적이었다. 이 경기를 중계한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곧 KBO리그에서 최고의 투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투수가 좋은 공을 던지려면) 견갑골 근육을 잘 써야 하는데 그걸 굉장히 잘 사용하고 있다. 모든 구종을 완벽함에 가깝게 투구하고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휘문고를 졸업한 안우진은 2018년 1차 지명을 받아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계약금만 무려 6억원. 고교 시절부터 전국구 유망주로 이름을 떨쳤지만, 입단 직후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져 2018년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구단으로부터 50경기 출전 정지 징계까지 받아 데뷔도 하기 전에 '악동' 꼬리표가 붙었다. 올 시즌에는 지난 7월 팀 선배 한현희와 수원 원정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해 서울에서 술을 마신 게 적발돼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구단 징계로 시즌 아웃이 유력했다. 그러나 선발 보강이 필요했던 홍원기 키움 감독이 그를 1군에 불러올렸다.
그가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활약은 '악마의 재능'이라고 불릴 만하다. 2일 열린 WC 2차전 패배로 시리즈 탈락한 키움이 수확한 올해 포스트시즌(PS) 성과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