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 위즈를 정규시즌 1위로 이끈 이강철(55) 감독이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경기가 있다. 10월 28일 NC 다이노스와 더블헤더(DH) 1차전이다. 당시 이강철 감독은 1-1이던 8회 말 1사 2루에서 베테랑 박경수 대신 2년 차 젊은 타자 천성호를 대타로 투입했다. NC 투수 원종현을 상대한 천성호는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들어온 슬라이더에 어설픈 스윙을 하며 삼진을 당했다.
이강철 감독은 이어진 2사 1·2루에서 주전 유격수 심우준 대신 왼손 타자 김준태를 내세우며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NC 벤치는 우완 이용찬으로 투수를 바꿨고, 김준태는 4구 만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KT는 이 경기에서 1-1로 비겨 전날까지 0.5경기 차로 밀려 있던 1위 삼성 라이온즈와 승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강철 감독은 “박경수와 심우준을 뺀 내 선택을 크게 후회했다. 실수였다”고 돌아보며 “그토록 중요한 상황에서 나선 백업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내가 큰 부담감을 줬다는 것을 간과했다”고 자책했다. 이어 “시즌 초·중반이라면 타격감에 따라 대타를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한 경기 결과가 중요한 상황에서는 꾸준히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의 경험을 믿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강철 감독은 KT 타선의 화력이 식은 10월, 거의 매 경기 타순을 바꿨다. 하지만 NC전 이후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SSG 랜더스와 정규시즌 최종전(10월 30일)을 앞두고 “가장 좋았을 때 선발 라인업으로 짰다”며 웃어 보였다. 이 경기에서 대타도 쓰지 않았다.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끈 주전 선수들을 믿었다. 이튿날 열린 삼성과의 1위 결정전도 그랬다.
이강철 감독은 정규시즌 마지막 한 주를 앞두고 “이토록 힘든 순위 싸움은 처음이다. 피가 마른다”고 토로했다. 이길 생각만 하다가 조바심내며 악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배움을 얻었고, 중요한 경기에서 지켜야 할 운영 방침을 다시 세웠다. 그는 “앞으로도 큰 경기에선 주전을 믿으려고 한다. 아무리 타격감이 안 좋아도 그게 맞다. 상대 투수 입장에서도 주전을 상대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시즌(PS)에서는 사령탑의 선택 하나가 경기 흐름을 바꾼다. 경험이 부족한 ‘초보 감독’은 자충수를 두기도 한다. 1년 차 류지현 LG 트윈스 감독은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서 셋업맨 정우영을 5회 초 위기에서 조기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적시타를 맞았다. 허삼영 삼성 감독이 플레이오프(PO) 1차전에서 내세운 라인업 구성과 투수 교체도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반면 ‘가을 타짜’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은 정확한 상황 판단과 뚝심 있는 운영을 보여줬다.
이강철 감독도 처음으로 PS을 지휘한 지난해 PO에서 실패(1승3패)를 맛봤다. 정규시즌 내내 4번 타자로 나섰던 강백호를 2번으로 투입하고, 외국인 투수 윌리암 쿠에바스를 구원 투수로 내세웠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KIA 타이거즈, 키움 히어로즈, 두산 등에서 코치 생활을 한 이강철 감독은 지난 1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올 시즌 막판에는 치열한 선두 싸움을 통해 PS 리허설을 치렀다.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한국시리즈(KS)에서는 이강철 야구의 정석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