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 윌리엄 쿠에바스(31)와 두산 베어스 아리엘 미란다(32). 2021 KBO 한국시리즈(KS)를 치르는 두 팀 마운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외국인 투수다. KT와 두산이 올해 KS 우승을 다투게 되면서 쿠에바스와 미란다의 '가을 영웅' 대결도 흥미로워졌다.
쿠에바스는 이미 한 발 앞서나갔다. 지난 14일 열린 KS 1차전에 선발 등판해 7과 3분의 2이닝 7피안타 8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했다. 지난해 플레이오프(PO)에서 두산에 졌던 KT가 불안감을 날리고 기선을 제압하게 된 계기였다.
쿠에바스는 KT가 KS로 직행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NC전(7이닝 2실점)에서 공 108개를 던진 뒤 이틀만 쉬고 31일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했다. 그리고 다시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KT의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창단 첫 통합 우승을 노리는 KT에게는 올가을 최고의 복덩이다.
미란다는 결정적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올 시즌 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1위. 삼진 225개를 잡아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37년 만에 경신(종전 1984년 최동원·223개)했다. 명실상부 올해 최고의 외국인 투수다.
당초 포스트시즌 등판은 불투명했다. 시즌 막바지 어깨 통증이 찾아와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PO, PO에 모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잠실에 남아 회복에 힘썼다. 두산이 7년 연속 KS에 진출하면서 미란다도 극적으로 KS 마운드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김태형 감독은 미란다를 3차전 선발 투수로 염두에 두고 있다. 7전 4선승제 KS에서 3차전은 시리즈 흐름을 좌우하는 한 판이다. 선발 투수가 부족해 마운드를 힘겹에 운영해온 두산은 미란다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기다리고 있다.
둘 다 올 시즌 초반엔 '애물단지'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쿠에바스는 4월 평균자책점 4.05, 5월 평균자책점 8.44로 부진했다. 이강철 감독이 최후의 보루로 '불펜 전환' 카드를 꺼내들었을 정도다. 위기감을 느낀 쿠에바스는 6월 25일 한화전(5이닝 무실점)을 기점으로 조금씩 신뢰를 회복해갔다. 지난 8월 말 부친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가족 곁을 지키라"는 구단의 배려를 받고 팀에 대한 애착과 소속감도 커졌다. 10월의 쿠에바스는 5경기 모두 6이닝 이상 던져 월간 평균자책점 2.16을 기록했다.
미란다도 5월까지는 종잡을 수 없는 투수였다. 홀수 순번 경기와 짝수 순번 경기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시즌 7번째 경기였던 5월 12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6이닝 10탈삼진 1실점을 기록한 뒤 8번째 등판인 19일 KT를 상대로 4이닝 6실점하는 식이었다. 김태형 감독도 잠시나마 "이렇게 기복 심한 투구를 계속 이어가면 (남은 시즌 동행 여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옐로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란다는 결국 10번째 등판(6월 1일 NC전 7이닝 3실점)부터 '짝수 징크스'를 깨고 연속 호투를 이어갔다. 두산의 인내에 보답한 미란다는 그렇게 최고 투수로 우뚝 섰고, 올해 KS에서 두산의 희망을 짊어진 에이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