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롯데·해태 등 국내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들의 표정이 어둡다. 수년째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격 담합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제재 대상에도 올랐기 때문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내달 15일 전원회의를 열고 빙그레·롯데지주·롯데제과·롯데푸드·해태제과·해태아이스크림 등 빙과류 제조업체 6곳의 공정거래법 위반(담합) 혐의에 대해 심의하고 제재 수준을 확정한다.
담합은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상품 가격 등에 합의하거나 거래처, 거래지역 진출을 제한해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공정위는 2019년 아이스크림 제품 가격, 유통과정 상 담합 정황이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조사에 착수해 지난 2016~2019년 담합 행위 증거를 확보했다. 지난 7월에는 제재 의견을 담아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농협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편의점 등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며 제품별 할인율을 미리 합의했다. 할인폭을 줄여 영업이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제조업체들이 대표적인 아이스크림 제품 판매가격의 인상률에 서로 합의한 증거도 포착됐다.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거래상대방 제한 행위'도 적발됐다. 제조업체들이 서로 거래처를 침범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제각각 영업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서 제품을 납품받아 소매점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 3개 유통업체도 담합 행위에 가담했다고 보고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공정위는 2007년 해태제과식품과 빙그레, 롯데제과, 롯데삼강 등 빙과류 제조업체 4곳이 아이스크림콘값을 담합한 혐의로 총 46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공정위에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빙과 업체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수년째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수억 원의 과징금까지 떠안게 될 처지에 놓여서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아이스크림 매출액은 2015년 2조184억원에서 2019년 1조4252억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반짝 성장해 1조5432억원 규모로 커졌지만, 여전히 2015년 대비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아이스크림의 원재료인 원유 가격이 L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3%(21원) 올랐다. 올 3분기 업체별 실적을 살펴보면 롯데푸드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1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3% 감소했다. 빙그레도 영업이익 183억6980만원을 기록, 전년 대비 11.9% 뒷걸음질 쳤다. 이들 업체는 앞선 2분기에도 5~6월 비가 많이 내려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전망도 어둡다는 데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주 소비층인 유·아동 및 청소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만한 디저트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가정 내 간식 수요 증가로 매출이 늘었지만, 올해 4분기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행으로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 부진에 따른 마땅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사정 당국의 제재까지 받게 됐다"며 "담합 의혹으로 출고가를 통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십 년간 ‘국민 간식’으로 자리해 온 빙과 사업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