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37·KT 위즈)는 성남고 시절 ‘천재 유격수’로 불렸다. 2003년 1차 지명을 받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유격수 중 하나인 류지현(현 LG 감독)의 후계자로 꼽혔다.
하지만 박경수는 2014년까지 출전한 933경기에서 타율 0.241, 43홈런, 246타점에 그쳤다. 유격수 포지션도 지키지 못해 1루와 3루를 떠돌다 2007년부터 2루수로 나섰다. 데뷔 10년이 지나도록 만년 유망주로 불렸다.
박경수는 2014년 11월, 1군 진입을 앞둔 제10구단 KT로 이적했다. 서른 살 이후에 야구 인생을 꽃피웠다. 2015년 풀타임을 뛰며 타율 0.284, 22홈런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처음으로 3할(0.313) 타자로 올라섰다. 2016~2018년에는 주장을 맡았다.
박경수가 이끄는 KT는 점차 강해졌다. 2019년 창단 처음으로 5할 승률(71승 2무 71패)을 기록했고, 2020년에는 정규시즌 2위에 올랐다. 그해 11월 9일 열린 플레이오프(PO)에 출전한 박경수는 역대 최고령(36세 7개월 9일)에 가을야구를 처음 경험한 선수로 기록됐다.당시 KT는 두산 베어스에 1승 3패로 패하며 탈락했다. 데뷔 후 18년을 기다린 박경수의 가을도 짧았다. 그러나 올해 다시 기회를 얻었다.
KT는 10월 31일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서 1-0으로 승리,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에 직행했다. 박경수는 이 경기 9회 말, 구자욱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박경수의 투지는 두산과 만난 KS에서 더 뜨거워졌다. 1·2차전에서 눈부신 호수비를 보여주며 KT의 2연승을 이끌었다. 1차전 5회 초 2사 1루에서는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의 날카로운 타구를 다이빙캐치 했다. 2차전 1회 초 무사 1·2루에서도 페르난데스의 총알 같은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낸 뒤 병살타로 연결, 흔들리던 선발 소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2차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박경수는 “공격을 잘해서 MVP를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3차전. 그는 타석에서도 빛났다. 0-0 균형이 이어지던 5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두산 선발 아리엘 미란다의 시속 146㎞ 포심 패스트볼(직구)을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미란다는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225개) 신기록을 세운 투수. 박경수도 정규시즌에선 미란다를 상대해 2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그러나 이날은 승부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렸다.
KT는 선발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가 5와 3분의 2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7회 초 조용호의 좌전 적시타, 황재균의 희생플라이로 2점을 추가하며 3-0으로 앞섰다. KT는 리드를 지켜내며 3-1로 승리했다. 박경수의 홈런은 결승타가 됐다. 박경수는 승리의 기쁨을 그라운드에서 나누지 못했다. 8회 말 무사 1루에서 안재석의 빗맞은 타구를 처리하다가 오른 종아리 부상을 당했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 그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박경수가 끝까지 공을 쫓은 덕분에 두산 1루 주자 박세혁은 진루하지 못했다. 공은 박경수의 글러브를 맞고 그라운드에 떨어졌지만, 우익수 제라드 호잉이 재빨리 잡아 2루 송구로 주자를 잡아냈다. 박경수의 투혼으로 잡아낸 아웃카운트였다.
KT는 통합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뒀다. 지금까지 KS에서 1~3차전을 싹쓸이한 팀은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KS 3연패를 당한 팀이 ‘리버스 스윕’을 해낸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18일 오후 6시 30분 시작하는 KS 4차전 선발 투수는 배제성(KT)과 곽빈(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