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이강철(55) KT 위즈 감독은 2021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우승을 이끌었다. 해태 타이거즈 투수였던 1996년 KS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던 그가 사령탑으로도 정상에 선 것이다. KBO리그 39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선수 시절 KS 우승 반지 5개를 수집한 이강철은 152승을 거두며 리그 통산 다승 3위에 올라 있다.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야구 속설에 정면으로 맞선 게 이 감독이다. 늘 겸손하고, 공부한 덕이다.
2005년 선수에서 은퇴한 이 감독은 KIA 타이거즈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2시즌을 마친 후에는 염경엽 감독이 이끌던 키움(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KIA의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던 그가 ‘꽃길’을 포기한 것이다. 다른 팀에서 다른 야구를 배우기 위해 고교 후배를 보좌하러 간 것이다. 이후 4시즌 동안 그는 염 감독의 세밀한 야구를 함께했다.
이 감독은 2017시즌부터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김태형 감독도 그의 후배다. 이 감독은 김 감독이 던지는 승부수를 배웠다. 디테일 야구와 스케일 야구를 차례로 경험한 것이다.
투수 전문가인 이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야구를 보는 시야를 넓혔다. 그리고 2017년 두산 퓨처스(2군) 감독을 맡은 후 본격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 감독은 “(2군을 맡아) 직접 경기를 운영하며 ‘난 아직 감독이 될 준비가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값진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이 감독은 2018년 11월, 우리 나이로 53세에 KT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첫 시즌 그가 가장 큰 변화를 준 쪽은 야수진이었다. 새 야수들을 기용하고, 적극적으로 타순을 바꿨다. 공격적인 작전 지시로 한 베이스를 더 보내는 ‘기동력 야구’를 실현했다. 코치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데이터 야구’도 접목했다.
물론 다 성공한 건 아니다. 타격이 강한 오태곤(현 SSG 랜더스)을 유격수로 내세웠지만, 공·수 모두에서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발이 빠른 심우준을 1번 타자로 썼다가, 30경기 만에 이를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참모(코치)의 말에 귀를 열었다. 틀린 걸 빨리 인정하며 오답 노트를 채웠다.
시행착오가 점차 줄었다. 그렇게 강해진 리더십은 점차 좋은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백업 선수였던 배정대를 주전 중견수로 내세운 선택이 대표적이다. 이 감독도 “지난 3년 동안 가장 잘한 판단”이라고 했다. 조바심을 내며 완패(시리즈 전적 1승 3패)를 당했던 두산과의 지난해 플레이오프(PO)도 값진 교훈으로 삼았다. 1년 만에 더 강해진 KT는 KS에서 다시 만난 두산에 4연승 하며 설욕했다.
해태 출신의 한 야구인은 “선수 시절 이강철은 야구를 잘했다. 그러나 해태에선 대단한 스타가 아니었다. 더 뛰어난 투수, 더 대단한 타자가 많았다. 이강철은 그런 환경에서 겸손했고, 잘 배웠다. 그 노력이 오늘 그가 감독으로 성공한 자양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 이 감독은 선동열·조계현·김정수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밀렸다. 스스로 “난 2인자였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감독 부임 후에는 “지도자로는 1인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서두르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았다. 코치, 선수들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만년 꼴찌’ 막내 팀 KT를 맡은 지 3년 만에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선수 시절 그의 투구폼처럼 유연하면서 강한 ‘강철 매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