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대리인 제도가 갖은 꼼수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대리인이 선수를 과도하게 보유하는 걸 막는 이른바 '독과점 방지법'이 무용지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A 구단 단장은 "현재 적용되고 있는 인원 제한 규정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실효성이 없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2017년 9월 26일 열린 KBO 제3차 이사회는 '2018년부터 선수 대리인 제도를 시행한다'고 의결했다. 그러면서 '한 대리인이 동시에 구단당 선수 3명, 총 선수 15명을 초과해 대리할 수 없다'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특정 대리인의 입김이 너무 강해지는 걸 경계해서다. 하지만 몇몇 대리인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이 조항을 무력화하고 있다.
수시로 계약과 해지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악용한다. FA를 앞두고 일괄적으로 대리인 계약을 신고했다가 계약이 끝나면 다시 해지하는 방식이다. 이번 겨울에도 지난달 23일 국대 최대 대형 에이전시에서 FA 선수 5명의 대리인 계약을 무더기로 신고했다. 대부분 대리인 규정에 포함하지 않는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선수를 점유하고 있다가 FA 때만 대리인으로 등록, 계약 후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다시 전환한다. 인원 제한에는 저촉되지 않지만, 선수를 넣고 빼며 관리 규정을 피해 가는 꼼수에 가깝다.
한 구단 관계자는 "무슨 '부동산 떴다방'도 아니고, 심각한 수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B 구단 단장은 "FA 계약의 경우엔 그 선수에 대한 대리인 계약을 3~4년 정도 유지해야 인원 제한을 둔 조항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급력이 큰 FA 계약에 한해서는 수시로 계약하고 해지하는 편법을 제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겨울 KBO리그 FA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특정 포지션 선수를 다수 보유한 에이전시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영향이다. 한 선수의 계약을 이용해 다른 선수의 몸값을 키우기도 한다. 팬들의 등쌀을 무시할 수 없는 구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갑을 열고 있다.
C 구단 직원은 "지금은 시장의 독과점이 너무 심각하다. 이렇게 하면 한쪽에서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올해도 그러지 않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D 구단 직원도 "현행 대리인 제도는 문제가 크다. 선수 계약을 가지고 장난칠 수 있다. 몸값을 부풀리면서 시장 가격을 악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야구계 안팎에선 "특정 에이전시가 2022년 우승팀을 정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구단들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E 구단 단장은 "FA 시장에 광풍이 불어오고 있다. 구단마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지금의 분위기는) 구단 운영에 독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대리인 제도를 관리 감독 해야 하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무기력하다. 선수협은 비밀 조항(선수대리인 규정 제23조)을 이유로 선수의 대리인이 누군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떤 선수가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고 대리인 계약으로 묶여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선수협은 14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대리인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장동철 선수협 사무총장은 "(인원 제한을) 완전히 오픈할 건지, 대리인 계약 기간을 길게 갈 것인지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매니지먼트 계약과 대리인 계약을 혼용하면서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