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샤넬이 고객들에게 나눠준 연말 사은품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단가 만원 가량의 협탁용 스노우볼이 수십만원에 판매되는데,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샤넬 로고만 붙으면 묻거나 따지지도 않고 사는 분위기다.
샤넬은 버릴 게 없다?
샤넬이 VIP 고객에게 나눠준 공짜 사은품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최근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는 '샤넬 스노우볼 팝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판매자는 "2021년 VIP 연말 선물로 받은 스노우볼이다. 책상, 진열장, 화장대에 올려놔도 이쁘다"면서 15만원을 제시했다. 이 스노우볼은 오르골이나 램프 기능이 없는 단가 1만~2만원 수준의 평범한 제품이다. 다만, 스노우볼 안에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샤넬 넘버5' 향수 모형이 들어가 있다.
중고명품 플랫폼 구구스에서는 샤넬 부티크(의류·가방)가 VIP에게 연말 사은품으로 나눠준 '미니 버킷 체인 크로스백'이 인기다. 거래 가격은 180만~240만원 선에 형성돼 있는데, 제품이 올라오는 족족 팔린다. 샤넬의 스몰 레더 굿즈(가방보다 작은 지갑 등의 제품) 가격이 평균 300만~400만원대인데 반해 저렴해 인기다.
샤넬 뷰티(화장품)와 부티크(가방과 의류)는 연말마다 고객 등급별로 기프트를 준다. 기준은 비공개다. 업계는 뷰티가 연 200만~500만원, 부티크는 연 5000만원에서 1억~2억원 이상을 샤넬에서 쓰면 VIP로 분류된다고 본다. VIP 안에서도 등급이 또 한 번 나뉜다.
샤넬은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샤넬 로고만 박히면 뭐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 A 씨는 "샤넬 제품을 살 때 제품을 싼 파우치, 상자, 쇼핑백까지 소중하게 다룬다"며 "쇼핑백은 온라인에서 사이즈와 까멜리아(샤넬을 상징하는 꽃장식) 상태에 따라 2만~5만원에 거래된다. 상자는 7만~8만원, 최근 백화점 구매 영수증까지 끼워주면 10만원 이상도 팔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이런 물건은 샤넬 제품을 제대로 보관하고 싶은 사람이나 가품을 샀는데 포장이 필요한 사람 등이 산다고 귀띔했다. 특히 매년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해 잘 판매된다고 한다. A 씨는 "샤넬은 정말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브랜드다. 150만원 짜리 구두를 한 켤레 사도 이렇게 재테크를 하면 10만원은 번다"고도 했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샤넬
한국인의 샤넬 사랑은 지극하다 못해 눈물겹다. 1000만원짜리 가방을 살 때도 며칠이나 줄을 선다. 실제 포털사이트 내 패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샤넬 '오픈런(매장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행위)' 방법과 노하우, 매장별 제품 입고 소식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소비자 B 씨는 "'플미(정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제품을 산다는 의미의 조어)'를 주지 않고 가방을 사려고 오픈런 줄을 선 적이 있었다. 한겨울 오전 7시에 갔는데도, 대기 번호가 30번대였다. 매장문 열고도 3~4시간 더 시간을 보내다가 입장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결국 당일에는 원하던 제품을 만나지 못했다던 그는 "매대가 비어있었다. 클래식백 같은 인기 제품은 이미 팔렸거나 입고가 안 됐고, 언제 들어오는지는 직원들도 모른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가격을 올릴수록 잘 나가는 모양새다. 샤넬은 지난해에만 4차례 가격을 올렸는데, 그때마다 백화점 앞에는 인상 전에 제품을 사겠다면서 긴 줄이 늘어서곤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샤넬 코리아의 2020년 매출은 9295억원으로 2019년(1조638억원)과 비교해 소폭 줄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1491억원으로, 2019년(1109억원)보다 34% 증가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줄어들고 이에 따른 보복소비는 증가하면서 샤넬의 매출도 더 뛰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지난달 15일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샤넬은 2020년 전체 매출의 8.5%를 한국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전체 샤넬 매장이 9개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매장당 벌어들이는 수익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샤넬은 이제 여자라면 하나쯤 가져야 하는 명품으로 취급된다. 가방 하나에 천만원에 달하고, 오픈런까지 해야 하지만 그럴수록 희소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