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으로서 우리 선수들이 이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숙명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구단의 자금 사정도 봐야 하고 제 욕심만 차릴 수는 없습니다.”
김기동(50) 포항스틸러스 감독은 올해도 차와 포를 뗀 상태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포항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해결사’ 부재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쓸만한 외국인 공격수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어 올해도 이승모를 최전방에 세우는 고육지책을 당분간 유지해야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측면 자원 강상우(29)가 전북 현대로 이적한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전북도, 포항도 이적 협상 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포항은 선수단 운영비가 필요하고 전북은 K리그 6연패에 도전할 선수가 필요하다.
김기동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전후로 포항이 전북에 핵심 선수를 보내는 게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 손준호를 비롯해 김승대, 고무열, 일류첸코, 송민규 등 K리그 톱클래스로 키워놓은 선수들이 줄줄이 전북의 녹색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포항 팬들이 “이쯤되면 포항은 전북 2중대 아니냐”며 자조 섞인 탄식을 내놓는 이유다.
13일 서귀포에서 만난 김 감독은 “이번 겨울에는 강상우가 전북의 타깃이 됐는데, 상우에게는 고맙게 생각한다. 지난해 시즌을 치르며 ‘시즌 끝날 때까지만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약속을 지켜줬다”면서 “(현재 대표팀 전지훈련에 합류한) 상우에게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널 응원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털어놓았다.
매년 핵심 멤버를 떠나보내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게 포항의 뚝심이자 경쟁력이다. 그 중심에 김 감독이 있다. 주어진 선수 구성에 최적화 된 전술을 찾고,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들이 보이면 때론 아버지처럼 때론 형처럼 분위기를 바꿔가며 다독인다. 언론과 팬들은 김 감독의 리더십에 ‘기동 매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마술을 부린 건 아니다. 김 감독의 성공 비결은 끊임 없는 분석에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상대팀 영상을 돌려보며 공략포인트를 찾는다. “틈 날 때마다 프리미어리그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즐겨본다는 축구인 인터뷰를 볼 때마다 부럽다. 난 그렇게 못 한다. 시즌 중에는 우리 영상이나 상대팀 영상 보고 또 보기 바쁘다”며 멋쩍어했다. “최근에 영입 대상으로 점찍은 외국인 공격수 영상을 며칠 째 밤을 새 가며 돌려봤다”고 말하는 김 감독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부단한 노력 덕분에 포항은 순항 중이다. ‘김기동호’로 깃발을 바꿔단 첫해 K리그를 4위로 마쳤고, 2020시즌엔 3위를 했다. 지난해엔 K리그 순위는 낮았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2위에 올랐다.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축구계에 ‘자이언트 킬러’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김 감독은 “순서대로라면 이젠 우승해야할 때 아니냐”며 활짝 웃은 뒤 “현실적으로 K리그 우승에 도전할 전력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준비하기에 따라 FA컵은 가능성의 문이 열려 있다. 내년에 포항 팬들과 또 한 번 아시아 무대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도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