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 참석한 염기훈. [사진 프로축구연맹]“마지막 80번째 골이 FC서울과 경기에서 프리킥 골이면 기분이 더 좋을 것 같다.”
프로축구 K리그1(1부) 수원 삼성의 미드필더 염기훈(39)이 ‘예고 은퇴’를 했다. 염기훈은 지난 25일 경남 남해에서 열린 K리그 전지훈련 미디어캠프에 참석해 “시즌 중간 (은퇴를) 선언하는 것보다 시즌을 앞두고 말씀드려서 팬들과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염기훈은 스스로 은퇴 시기를 결정했다. 그는 “(한국 나이) 마흔 살까지 뛰고 은퇴하고 싶다고 항상 얘기했다. 마흔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면서 “구단에서 은퇴 시기를 나보고 정하라고 했다. 그 배려가 큰 힘이 됐다. 지도자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KFA) 지도자 자격증 A급을 따낼 만큼 제2의 축구 인생을 열심히 준비 중이다.
은퇴 소식에 팬들만큼 놀란 이는 아들이다. 아버지를 따라 축구를 시작한 아들이 아버지가 더는 피치를 누비지 않는다는 소식에 가장 서운해했다고 한다. 염기훈은 “아들이 친구를 통해 (은퇴 소식을) 알게 됐다. 은퇴식에서 아들이 가장 먼저 울 것 같다. 내가 축구선수인 걸 정말 좋아했다. 아들이 그 누구보다 내 은퇴를 슬퍼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하나원큐 K리그1 2021’ 수원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가 2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경기전 수원 염기훈이 400굥기 출장 기념패를 받고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jung.sichong@joongang.co.kr /2021.03.21.염기훈은 수원을 대표하는 선수다. 2010년 수원에 입단해 지난 시즌 수원 소속 선수 중 공식전 최다 출전 기록(392경기)을 달성했다. 프리킥 득점(17개)은 K리그 공동 1위다. 올해로 프로 17시즌째를 맞는 그는 리그 통산 423경기에 나서 77골 110도움을 기록했다. 골을 넣고 ‘마에스트로’를 연상하게 하는 지휘 세리머니로 ‘염마에’라는 별명도 있다.
지난해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동국처럼 은퇴 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팬들 곁에서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염기훈은 “지금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동계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동기부여가 강하다. 동국이 형처럼 은퇴하고 싶다. 우승컵을 안고 은퇴하는 게 모든 선수의 꿈”이라고 했다.
이어 염기훈은 “코로나19가 길어지고 있다. 육성 응원이 금지돼 응원 콜(개인 응원가)이 그립더라. 모든 K리그 선수들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라며 “은퇴 마지막 날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해져) 응원 콜을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팬들이 불러주는 염기훈의 응원 콜은 “왼발의 지배자, 염기훈”이다.
염기훈의 시선은 이제 K리그 최초 ‘80골 80도움’으로 향한다. 80도움(1부 99도움. 2부 11도움)은 진작 넘었고, 80골까지 3골(1부 70골, 2부 7골) 남았다. 염기훈은 “80골 80도움을 달성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 은퇴 후 후배들이 기록을 깰 수 있겠지만, 욕심이 난다”고 했다.
80호 골을 넣고 싶은 상대 팀은 서울이다. 수원과 서울이 맞붙는 라이벌전은 ‘수퍼매치’라 불릴 만큼 열기가 뜨겁다. 그는 “수원과 서울은 라이벌 구도가 있지 않나. 수퍼매치에서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다. 수퍼매치에 따라 팀 분위기가 좌우됐다. 80번째 골은 서울과 경기에서 프리킥 득점이라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