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 드라마 ‘그 해 우리는’는 ‘한드’에서 흔히 클리셰라 말하는 진부하지만, 시청률을 흔들 수 있는 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주인공 최웅(최우식 분)이 어릴 적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과거, 국연수(김다미 분)가 가난 때문에 남자친구와 결별을 했다는 설정 정도가 작품을 흔든 요소였을 테지만 다년간의 막장 요소에 길들여진 한드 시청자들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거의 없었기에 무해 드라마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뭉근하지만 꺼지지 않는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의 대본을 집필한 이나은 작가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고 소소한 이야기”라며 ‘그 해 우리는’을 소개했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고등학교 전교 1등 국연수와 전교 꼴등 최웅이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뒤 성인이 돼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SBS 제공 원작의 탄탄함을 TV로 끌어낸 건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이 작가의 공이 컸다. 20대 후반 청춘들의 인생과 사랑을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드라마는 1993년생인 이 작가와 또래 친구들의 경험이 녹아있다.
이 작가는 “드라마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을 볼 때마다 힘이 났다. 나와 같은 지점을 고민하고, 나와 비슷하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는 거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를 보면서 누군가 위로를 받았다고 하니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기뻐했다.
이 작가가 데뷔작으로 쓴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1억뷰를 넘는 기록을 세웠고, 인기에 힘입어 시즌3까지 제작됐다. 이후 ‘연애미수’도 청춘 로맨스 팬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젊은 층에 팬덤을 형성했다. 장편 드라마 대본 집필은 ‘그 해 우리는’이 처음이다. '그 해 우리는' 이 작가는 “내가 작가로서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이 청춘 로맨스를 쓰는 데 큰 장점이 된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 “첫 드라마를 할 때만 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분 정도 길이의 드라마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고, 1분이 5분, 5분이 1시간으로 늘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극을 힘 있게 끌어가는 전개는 역량이 달린다. 하지만 그만큼 앞으로 성장할 기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TV 밖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데는 이 작가의 감각적인 ‘대사빨’이 컸다. 국연수의 “내가 버릴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최웅의 “다른 사람 아니고, 우리잖아. 그저 그런 사랑한 거 아니고, 그저 그런 이별한 거 아니잖아” 등 담백하게 내뱉는 사랑의 속삭임이나, 진심을 꾹 눌러 담은 독백이 매회 화제가 됐다. 사진=SBS 제공 이 작가는 “멋지게 꾸민 특별한 대사들이 아니라 대본을 쓸 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적재적소에 대사가 나올 수 있도록 상황 구성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군가에게 해봤던 말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같기도 한 평범한 대사들을 일기장을 보는 듯한 마음으로 좋아해 준 것 같다. 오글거리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드라마는 기승전결의 극적 고저 없이 담담하게 16회를 이어갔다. 이 작가 스스로 힘있게 극 전개를 밀어붙이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은 이 때문에 ‘그 해 우리는’을 ‘인생드’ ‘최애드’로 마음에 품었다.
그는 “16부작을 인물의 감정선으로만 끌고 가다 보니 걱정은 있었다. 감독님께서 다행히 대본이 잘 읽힌다고 했다. 사건이나 갈등이 극적이지 않은 이런 드라마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차기작을 정하지 않았지만 30대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단다. “20대를 지나 조금은 어른이 된 청춘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