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중국 베이징 캐피탈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최민정(24)은 쇼트트랙 대표팀 동료 황대헌이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확인했다. 앞서 열린 여자 3000m 계주를 마치고 인터뷰에 임하던 중 갑자기 함성이 터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환호하는 황대헌을 보며 따라 웃었다.
최민정은 "동료로서 너무 기쁘다. 정말 잘했다"고 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후 처음으로 보여준 미소. 안도감도 전해졌다. 한국 쇼트트랙은 대회 5일 차까지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경기력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대헌이 첫 금메달을 안겨줬다. 쇼트트랙 최강국 자존심을 지켰고, 가라앉은 대표팀 분위기도 바꿀 수 있었다.
최민정도 이날 역주를 펼쳤다. 한국은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레이스 막판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역전을 당하며 3위로 밀렸다. 하지만 최민정이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바깥쪽 코스로 치고 나가 ROC 선수를 제쳤고,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은 이 종목 올림픽 3연패를 노리고 있다. 최민정 덕분에 탈락 위기를 넘겼다.
경기 후 최민정은 "2등 안에 들어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 주자였기 때문에 책임감이 컸다. 다른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잠시 밀렸지만, 다행히 버텨냈다. 이후 '무조건 따라잡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렸다"고 돌아봤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레이스였다. 최민정은 지난 7일 열린 여자 500m 준준결승전에서 탈락했다. 레이스 도중 넘어지고 말았다. 500m는 최민정의 주 종목이 아니지만,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계주에서 진짜 실력을 보여줬다. 500m 탈락 후에도 그의 멘털은 흔들리지 않았다. 최민정 "500m도 준비를 많이 했다. 하지만 예선 탈락은 지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었다. 그동안 올림픽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노력이 단 한 번 넘어졌다고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최민정은 11일 주 종목(세계랭킹 3위)인 여자 1000m에 출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두 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라이벌' 수잔 슐팅과의 정면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대표팀과 자신 모두 좋은 기운을 얻었다. 최민정은 "종목이 많은 쇼트트랙에서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황)대헌이가 금메달을 따내며 좋은 흐름을 탔다. 나도 1000m, 1500m 그리고 계주 결승을 남겨두고 있다. 앞서 출전했던 종목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정은 메달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응원을 보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금메달로 보답할 생각이다. 이제 최민정의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