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컬링 국가대표 '팀 킴(강릉시청)' 스킵 김은정(32)은 한일전 승리를 이끌고도 담담했다. 국민적 관심이 쏟아진 경기에서 수 차례 완벽한 샷을 구사했지만, 자신의 경기력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유의 강철 같은 멘털이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빛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국립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풀리그 6차전에서 일본(스킵 후지사와 사츠키)에 10-5로 승리했다. 9엔드에서 점수 차를 5점까지 벌려 일본의 백기를 받아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열린 올림픽 자격대회(OQE)에서 일본에 2연패 당했다. 그러나 본선 무대에서 설욕했다.
김은정은 승부처마다 빛났다. 1-2로 지고 있던 3엔드, 8번째 스톤으로 일본 스톤 3개를 하우스 밖으로 쳐내는 트리플 테이크 아웃을 해내며 전세를 뒤바꿨다. 9·10번째 스톤으로도 한국이 유리한 포진을 만들었다. 7엔드 후반에도 1번(하우스 중앙인 버튼에서 가장 가까운 스톤)을 차지하는 절묘한 드로우 샷을 보여줬다. 후공이었던 일본은 스톤을 버튼에 붙여 득점할 수 있었지만, 부담감이 커진 일본 스킵 후지사와의 샷이 흔들리며 기회를 놓쳤다.
한국은 앞서 치른 두 경기(중국·미국)에서 졌다. 한일전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은정은 머릿속에서 상대를 지웠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는 "한일전을 신경쓰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상대보다는 오전(미국전) 경기에서 부족했던 슬라이딩과 드로우 감각을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동료, 코치님들과 상의해 고친 부분이 잘 통했다"라고 말했다. 김은정은 대회 전에도 일본전 각오를 묻는 말에 "시트 상태와 스톤 적응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한일전은 김은정과 후지사와, 두 스킵의 라이벌 구도도 주목받았다. 후지사와는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도 일본을 이끈 선수. 이날 김은정은 샷 성공률 90%를 기록하며 71%에 그친 후지사와를 압도했다.
김은정은 "상대 스킵 선수가 몇 번 실수해서 상대적으로 쉬운 샷을 할 수 있었다. (스톤) 웨이트 감각은 제대로 찾지 못했다. 일본전 내 점수는 80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후지사와에 대해서도 "특별히 경쟁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후지사와는 감각이 좋고, 차분하게 팀을 이끄는 모습 등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 한국과 일본 선수가 아니었다면 서로 더 좋은 관계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팀을 이끄는 김은정의 모습에 누리꾼들은 '안경 선배',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등 리더십과 강한 멘털과 리더십을 나타내는 별칭을 붙여줬다. 베이징 대회에서도 여전했다.
한국은 3승3패로 예선 공동 5위에 올라 있다. 16일 스위스전(5승1패)은 토너먼트(4강) 진출 분수령이다. 김은정의 샷 성공률이 90% 이상 기록한 두 경기는 승리, 80% 이하로 떨어진 두 경기는 패했다. 한국의 올림픽 2연속 메달 도전은 김은정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