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여자 국가대표 김보름(29)이 눈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마쳤다. 4년 전과 달리 기쁨과 고마운 마음이 섞인 눈물이었다.
김보름은 19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여자 결승전에서 5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레이스 내내 안정감 있는 페이스를 보여줬지만, 결승선까지 2바퀴를 남겨두고 나선 스퍼트에서 상대 선수와 접촉이 있었고, 치고 나설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김보름은 지난 4년 동안 마음고생이 컸다. 2018 평창 올림픽 여자 팀 추월 8강전에서 '왕따 주행' 논란 중심에 섰다. 팀 선배 노선영이 멀찍이 뒤처진 상황에서 페이스를 맞추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고, 이어진 인터뷰에서 비웃는 듯한 모습을 보여 질타를 받았다. '고의로 속도를 높였다'는 의혹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빙싱경기연맹 감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보름은 그사이 스케이트화를 벗을 생각을 할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번 대회에서 피해를 본 쪽은 김보름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그동안 폭언과 욕설,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두고 소송전을 벌였는데,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가 김보름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 일부 승소 판결. 노선영은 김보름에게 300만원을 해야 한다.
운동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 시국까지 맞이했다. 전지훈련, 국제대회 출전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섰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김보름은 "레이스 중반 이후 리드 쪽으로 가봐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조금 서둘렀던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며 자책했다. 하지만 "정말 노력했고,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쳤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라고 전했다.
김보름은 '왕따 주행' 논란 후 이어진 평창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땄다. 하지만 박수받지 못했다. 자신도 웃지 못했다. 사연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진 김보름을 안타까워했다.
악몽 같은 경험 이후 김보름은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웠다. 응원받지 못하는 국가대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대회 중 소송 결과가 나왔고, 이미 그 전부터도 평창 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상태였다.
김보름은 "'내가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응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응원을 많이 받았다. '이미 금메달입니다'라는 응원이 가장 기억남는다. '응원받으며 대회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하고 다시 생각했다. 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라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김보름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매스스타트 종목 올림픽 2연속 '톱5'를 해냈다. 다시 도전이다. 30대에 접어들었지만, 매스스타트는 전략과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김보름도 "지금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