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기계'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에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목표가 하나 있다. 바로 '홈런'이다.
이정후는 자타공인 KBO리그 최고의 교타자다. 2017년 1군 데뷔 후 매년 3할 타율을 기록했다. 1군 통산 타율이 0.341로 2900타석 기준 리그 역대 1위(2위 장효조·0.331)다. 지난해에는 개인 첫 타격왕(0.360)까지 차지했다. 강병식 키움 타격코치는 이정후에 대해 "타석에서 대처 능력이 좋다.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오는 공을 배트에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다. 또 나쁜 공에는 배트가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흠잡을 곳 없는 성적이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1군 통산 홈런이 36개. 연평균 7.2개로 많지 않다. 깜짝 반등한 시기도 있었다. 2020년 홈런이 전년 대비 9개 늘어난 15개였다. 더 많은 장타를 때려내기 위해 트레이닝 파트와 협의하고, 근력 강화에 집중한 결과였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 타구추적시스템(HTS)에 따르면, 이정후의 인플레이 타구 기준 발사각(15.8도→17.9도)이 올라가면서 타구 속도(133.1㎞/h→137.6㎞/h)까지 빨라졌다. 정확도에 파워를 장착한 '완성형 타자'에 한발 다가서는 듯했다.
지난해에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홈런이 7개까지 다시 줄었다. 규정타석을 소화한 리그 53명의 타자 중 공동 33위였다. 모든 공격 지표가 최상위권이지만 유독 홈런만 중하위권이었다. 현재 전라남도 강진에서 2차 스프링캠프 중인 이정후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홈런 욕심은 항상 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그는 "홈런을 노리다가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타격하기) 좋은 공이 나오면 (펜스를)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냥 치던 대로 하려고 한다"며 무리하게 홈런을 의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장타율이 0.522였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낸 2020년(0.524)과 큰 차이 없었다. 홈런이 절반 이상 줄었지만, 타석 대비 2루타와 3루타 비중을 키워 장타율을 유지했다. 홈런이 장타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대신 선구안과 콘택트 능력을 앞세워 커리어 하이 출루율(0.438)을 찍었다.
그는 "타율이 높아지면서 출루율이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삼진을 당하는 걸 가장 싫어해 투 스트라이크 이후 더 집중했다"며 "올해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다고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던 대로 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후의 방향성을 반기는 건 홍원기 키움 감독이다. 홍원기 감독은 "이정후는 워낙 영리하고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다. (타격 스타일의 변화는) 홈런을 의식하는 공격 패턴보다 정확하고 강한 타구를 날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며 "국내에서 가장 정확한 타자인 만큼 더 많은 안타와 좋은 타구를 날리기 위해 홈런에 대한 욕심을 버린 것 같다. 홈런이 없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타자"라고 극찬했다.
이정후는 이제 영웅군단의 중심이다. 키움은 이번 겨울 간판타자 박병호가 KT 위즈로 FA(자유계약선수)로 이적했다. 이정후는 연봉 7억5000만원에 사인,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이 2011년 기록했던 6년 차 최고 연봉 4억원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2019년부터 4년 연속 해당 연차 최고 연봉 신기록을 작성하며 박병호가 굳건히 지키던 팀 내 연봉 1위 자리를 이어받았다.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와 타선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이정후는 "푸이그는 적응만 잘한다면 우리 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올 시즌은 시범경기가 많이 있으니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며 "책임감이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고연봉 선수가 되었으니 플레이뿐만 아니라 행동도 그것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