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외국인 투수 타일러 애플러(29)는 2021년 실패한 투수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 산하 트리플A에서 2승 9패 평균자책점 7.75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이 0.319, 이닝당 출루허용(WHIP)도 1.722로 높았다. KBO리그에서 영입할 만한 수준의 성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키움은 애플러의 반등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구단이 주목한 부분은 투구 각이었다.
지난해 7월 국제 스카우트팀을 파견한 키움은 애플러를 체크했다. 그런데 2019년 일본 프로야구(NPB)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뛸 때의 투구 매커니즘이 아니었다. "릴리스 포인트를 낮추자"는 워싱턴 구단 투수 코치 조언에 따라 팔 각도를 내린 게 화근이었다. 키가 1m96㎝로 장신인 애플러는 높은 릴리스 포인트가 강점. 하지만 팔 각도를 내리면서 밋밋한 투수가 됐다. 투구 폼이 어색하니 볼넷까지 많아졌다.
키움은 시즌 뒤 고형욱 단장과 허승필 운영팀장이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애플러를 직접 체크했다. 당초 메이저리그(MLB) 통산 151승을 기록한 어빈 산타나 영입에 공을 들였지만, 계약이 어려워지자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팔 각도를 올려 구위를 회복한 애플러를 확인했다. 고형욱 단장은 "팔의 타점이 올라가 훨씬 좋아졌더라. 직구에 힘이 붙고 변화구도 날카로웠다"고 말했다.
애플러는 스프링캠프 기간 송신영 투수 코치와 투구 각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각이 크면 타자가 휘두르는 배트에 공이 점과 점으로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면과 면이 부딪혔을 때보다 좋은 타구가 나오기 힘들다. 2022시즌 KBO리그 평균 신장은 182.9㎝. 2m에 육박하는 애플러는 타자들이 상대할 때 생소함을 느낄 수 있다. 키가 크다고 KBO리그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2019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브록 다익손은 키가 무려 2m5㎝였다. 하지만 6승 10패 평균자책점 4.34로 기대를 밑돌았다.
키움이 기대하는 건 애플러의 구속이다. 다익손은 직구 구속이 빠르지 않아 타자가 느끼는 위압감이 크지 않았다. 애플러는 지난 4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연습경기에서 직구 최고구속 시속 147㎞를 찍었다.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다양하게 섞어 타격 타이밍도 뺏었다. 결과는 1이닝 2탈삼진 무실점. 한화 주축 타자인 정은원과 하주석을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구단 내부적으로 "컨디션을 좀 더 끌어올리면 시속 150㎞ 직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다.
애플러는 MLB 경험이 없다. 연봉도 27만5000달러(3억3000만원)로 외국인 선수 중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뿐만 아니라 NPB까지 두루 거치며 다양한 타자를 상대했다. 흡수력도 워낙 좋아 팀에 잘 녹아들고 있다. 송신영 투수코치로부터 슬라이더를 좀 더 위력적으로 던질 수 있는 그립을 새로 배우기도 했다. 애플러는 "원래의 팔 각도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았을 때의 경기력이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